2004/monologue 43

마지막 날이다...

이제까지의 연말 중 올해만큼 바쁘고 정신없었던 때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송년회라고 해 본 거는 한두 번 정도 (그것도 간단히...) 매일같이 야근하느라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 본 게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무슨 연말이 이래~ 덕분에 한 해를 돌아본다든지 내년은 어떻게 살 지 떠올려 본다든지 그런 건 생각조차 못 해 봤다. 2004년의 마지막날인 오늘조차 하루 종일 사무실 대청소하느라 해야 할 일은 손도 못 대고 오후 6시가 다 된 이 시간에서야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기어코 지하철 타고 집에 가리라~) 마지막날이라 뭔가 그래도 끄적여야 아니 자판을 두드려야 할 것 같아서 블로그를 열긴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도무지 안 했던 지라 좀 막막하다... 올 한 해는... 그루가 다쳐서 병원에 ..

2004/monologue 2004.12.31

현실보다 상상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내년 봄부터 그루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하고 근처의 한 곳에 미리 등록을 해 놓았었는데 그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로 부모가 미리 선물을 갖다 주면 산타가 집에 방문하여 아이에게 전달해 준다면서 그루도 신청하면 해 주겠다고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보고 너무 좋아서 흥분하던 그루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던 터라 산타가 직접 주면 정말 좋아하겠다 싶어 그루 아빠가 신청을 했다. 1주일 전에 (그루가 갖고 싶다고 한) 선물을 미리 사서 어린이집에 전달해 주고는 1주일 내내 오히려 시댁 식구 포함한 어른들이 그 깜짝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 왔었다. 드디어 산타가 어제 저녁에 왔다! 원래 예정시간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집에는 그루와 그루 아빠만 있었고 나는 나중에 집에 와..

2004/monologue 2004.12.24

이제 막바지인 공연 – Superstar

열흘간의 공연이라 벌써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작품이 잘 나왔는데 기대만큼 실질적 성과가 나오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나는 이미 중독 상태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공연 OST CD를 아마 100번 가까이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들어도들어도 질리지 않고 들을 때마다 감동받고 전율을 느끼게 되는 정말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최고의 작품이다. 공연은 수원 트라이아웃 두 번, 서울 본공연 세 번을 보았는데 계속 공연장면이 아른거릴 정도다. 이번 주에 I Love You 프리뷰 공연이 아니었으면 아마 또 보러 갔을 지도 모른다.

2004/monologue 2004.11.24

오랜만의 여백...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엄연히 근무외 시간에 해당하지만 매일 야근을 생활화해온 요즈음이라 왠지 혼자 잘못하고 있는 듯한 당치 않은 죄책감을 살짝 느끼면서도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 나로서는 그나마 일탈이자 탈출이자 작은 반항이다. 예매한 영화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1시간... 스타벅스에 앉아 물끄러니 밖을 쳐다보고 있다. 할 일을 쌓아 둔 채로 Jesus Christ Superstar 연습실에 가서 Run Though를 2시간 동안 보았다. 그리고 원래 용산에 잡혀 있던 기업 미팅을 갔다가 생각 외로 너무 일찍 끝나서 용산 CGV에 처음으로 와 봤다. 용산 CGV가 있는 '스페이스 9'(서태지가 광고하던...).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바라본 이 곳은 마치 공룡 같다. 누군가 또 계획성 없이 ..

2004/monologue 2004.11.04

I Love You...

Jesus Christ Superstar와 함께 올 하반기에 올려지는 작품 'I Love You' (원제 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의 Press Release용 사진들이 나왔다. 출연진은 남경주, 이정화, 정성화, 오나라. 현재 오프브로드웨이에서 9년째 최장기 롱런하고 있는 작품으로 작품성도 뛰어나고 뮤지컬 넘버도 훌륭하다. 올해초 라이선스 계약 전 작품검토 단계 때부터 참여해서인지 특별히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지금 3주째 배우 리허설 중인데 베테랑 배우들이라 연습 속도도 빠르고, 암튼 작품은 잘 나올 것 같다. 요즘 두 작품 마케팅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일은 많고 욕심만큼 몰두는 안 된다. 몸을 (물론 머리 포함해서) 두 개로 쪼개고 싶은 심정이다.

2004/monologue 2004.10.20

뮤지컬대상 시상식

'Superstar' Showcase도 있고 해서 어제 뮤지컬대상 시상식에 갔다 왔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수상 후보들 자리 근처라서 (토요일에 중계방송한대는데 혹시 TV에 나오지 않을까 걱정...) 조승우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는데... 작년엔가 압구정동 어느 술집에서 박해일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참... 해맑다... 저렇게 해맑을 수 있구나...

2004/monologue 2004.10.20

소음인...

요새 몸이 계속 좋지 않다. 특별히 감기를 걸렸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몸에 氣가 하나도 없는 느낌... 내 몸이 땅에 푸욱 꺼지는 듯한 느낌... 물론 계속 바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런가보다도 싶다가 이전 회사에 비하면 약 절반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전엔 그렇게 바쁘고 스트레스 쌓여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늙었나 보다 싶기도 하고... 그루 아빠가 2주 전부터 한의원 가자고 그러는 걸 바빠서 갈 시간 없다고 그리고 한의원 갈 정도는 아니라고 계속 뿌리치다가 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요즘 몸이 정상이 아닌 것 같고 일단 내가 너무 힘들어서 오늘 오전에 집 근처 용하다는 한의원에 같이 갔다. 대부분의 병원의 기본이 문진이라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면 이러이러하게 대답해야지 하고 미리 생각하고 갔는데..

2004/monologue 2004.10.15

지난 주말, 그루와의 대화

토요일 저녁.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퇴근) "그루야, 내일 엄마 회사 안 나가는 날이다!" "그럼, 내일 일요일이야?" "응, 그루야, 좋아?" "응!" (같이 놀다가 밤 11시 45분경) "그루야, 이제 밤이야, 너무 늦었어. 엄마, 이제 집에 갈 테니까 너도 얼른 코~ 자? 그래야 내일 또 신나게 놀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야, 쫌만 더 놀아 줘~" "(난데없는 반응에 놀라고, 그리고 마음이 짠~하여) 그래, 그럼 쫌만 더 놀아 줄게." (또 같이 놀다가 밤 12시경) "그루야, 이제 진짜 늦었어. 너 빨리 자야지. 엄마, 집에 갈게." "(자기 아지트로 삼고 있는 볼 텐트에 쑥 들어가더니 고개를 또 처박고 삐죽삐죽... 단단히 삐쳤다는 표현이다)" "그루야, 그럼 ..

2004/monologue 2004.10.11

아따맘마

주말에 그루랑 투니버스를 가끔 볼 때가 있는데 재미있는 만화 한 편을 발견했다. '아따맘마'라는 만화로, 아마 매일 방송하는 것 같은데 일요일날 일주일치를 몰아서 틀어준다. 우연히 시댁 식구들이 한 자리에 있다가 그 만화를 보았는데 모두들 홀딱 반했다. 아리, 동동, 그리고 아빠도 웃기지만 특히 아따맘마가 최고다. 이제는 아따맘마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그루랑 보고 있으면 그루가 웃는 지점과 내가 웃는 지점이 거의 똑같다. 그루가 벌써 만화를 제대로 보고 있다. 추석 연휴 내내 그루랑 함께 있었더니 이전보다 그루가 더 자주 보고 싶다. 사람이라는 게... 함께 있었던 시간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함께 있었던 시간만큼... 미워하기도 한다...

2004/monologue 2004.10.05

사막을 알고... 길을 잃다...

알고 보니... 그녀는 모랫바람 서걱이는 사막에 혼자 있었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아 그녀가 있는 곳이 사막이라는 것을 다만 알지 못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하는지 그녀가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사막에 홀로 있었다 그 곳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미 낯선 이방인이었다. 혹은 웬만한 휘몰이 바람으로도 찾을 수 없는 모래 속 깊이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믿음 또는 당위성마저 부정되고 의심되었다. 사막을 알게 되자 길을 잃었다...

2004/monologue 2004.09.21

기쁘다...

어제 여름옷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요즘 바지를 입을 때마다 바지가 헐렁해서... 혹시나 하고... 붙박이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임부복들을 따로 보관해 놓은 박스를 꺼냈다. 거기에는 그루를 갖고 그 이후로 입지 못했던 Jean류의 바지 5벌이 있다. 그루를 낳고 몇 달이 흘러 한번 입어 보았지만 히프쯤에서 다 걸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처박아 두었던, 하지만 언젠가는 입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 차마 못 버리고 보관해 두었던... 만세! 입어보니 5벌 중 4벌이 맞았다. (남은 1벌도 입을 수 있긴 했지만 너무 딱 맞아서... 사실 그 한 벌이 제일 이쁜 거였는데...) 기쁘다. 3 여년만의 쾌거다!

2004/monologue 2004.09.14

잃어버린, 금요일의 즐거움

언제부터인가 (한 두세 달 전부터인 것 같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그것도 누군가가 오늘이 금요일이었다고 얘기를 해 줘서야 아! 오늘이 금요일이었구나... 갑자기 그때부터 괜히 억울해진다. 5일근무제에 해당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금요일에는 내일이면 주말이라는 괜한 기대감에 하루를 버티는 큰 힘이 되는데,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꼭 금요일이 다 저물어가는 저녁 때에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이다. (나도 불쌍하게 생각한다. 요일 감각도 없이 일하고 있는 내가...) 오늘은 그나마 1시간 전쯤 그러니까 오후 4시30분쯤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오늘이 금요일이다......

2004/monologue 2004.09.10

가을비 내리는 날, 선인장을 사다

비가 오고... 태풍 때문인지 날씨도 꽤 쌀쌀하다. 그래서인지 저번 비보다 오늘 훨씬 더 가을비 같다. 출근하는 지하철 내내 자다가 '논현역입니다' 소리에 잠이 덜 깬 상태로 부시시 내려 언제나처럼 자동메모리된 기계같이 늘 나가던 출구를 향해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돌려 지하철역 광장에 있는 꽃집에 갔다. 지금 내 사무실 책상 위엔 이름을 잊어버린 미니 화분이 하나 있다. 그 화분 역시 1년전쯤 논현역 안의 꽃집에서 샀다. 주인이 1주일에 한번씩은 물을 주라고 했고 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커피 마시기 전에 빈 종이컵에 물을 담아 부어 주었고 음... 내 생각에 1~2주일에 한 번꼴을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총 여섯 줄기 중 두 줄기가 시들었다. (그래도 남은 네 줄기는 키가 꽤 컸다...) ..

2004/monologue 2004.09.07

9월이다...

원래 기억에 9월 중순까지 반팔을 입었었던 것 같은데 왜 날씨가 이렇게 빨리 서늘해질까 의아해 했었더니 아니나다를까 늦은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9월이네... 달이 바뀌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별다른 감흥도 없고 갈수록 무디어지는... 참, 어제 화났던 것... 한나라당의 촌극 사건에 대한 얘기들을 인터넷 보도 상으로 접했을 때 미친 놈들, 별 짓을 다 하고 있네 생각했었고 대변인이 '그냥 연극일 뿐... '이라고 했을 때에도 연극을 모독하는군 했었는데 어젯밤 TV에서 그 촌극 끝장면의 커튼콜을 보는 순간 갑자기 꼭지가 확 돌았다. 커튼콜을 하는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연극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남다른 애정과 특별한 감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갖..

2004/monologue 2004.09.01

올림픽이 조금은 아름다운 이유

아테네 올림픽을 되돌아보는 많은 TV 영상들, 그리고 기사들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꽤 많은 것들이 발견되었다. 제대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은메달, 동메달리스트 그들의 환한 얼굴 그리고 멋진 모습들. 무릎을 꿇고만 수많은 세계기록 보유자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승자들... 늘 올림픽 때마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금메달 지상주의의 우리나라 태도. 미국의 경우는 전체 메달 총계로 국가별 순위를 발표한대는데 미국이 하는 일들 중에 그건 그래도 옳은 일인 것 같다. 결승전에서 아깝게 패했을 때에 그 당시에는 분하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겠지만 시상대에 올라서서 환하게 웃는 우리 나라의 은메달리스트, 동메달리스트를 나도 보고 싶다. 그들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할 수 있게 분명..

2004/monologue 2004.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