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monologue

현실보다 상상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spring_river 2004. 12. 24. 17:51

내년 봄부터 그루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하고
근처의 한 곳에 미리 등록을 해 놓았었는데
그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로
부모가 미리 선물을 갖다 주면 산타가 집에 방문하여
아이에게 전달해 준다면서
그루도 신청하면 해 주겠다고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보고

너무 좋아서 흥분하던 그루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던 터라
산타가 직접 주면 정말 좋아하겠다 싶어 그루 아빠가 신청을 했다.
1
주일 전에 (그루가 갖고 싶다고 한) 선물을 미리 사서

어린이집에 전달해 주고는
1
주일 내내 오히려 시댁 식구 포함한 어른들이
그 깜짝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 왔었다.

드디어 산타가 어제 저녁에 왔다
!
원래 예정시간보다 일찍 오는 바람에

집에는 그루와 그루 아빠만 있었고
나는 나중에 집에 와서
그루 아빠가 찍어놓은 캠코더 화면을 보았다
.
그런데 웬걸
~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청년)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루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좋아하기는 커녕 거실 구석으로 자꾸 숨으려고 하고

산타가 말을 시켜도 선물을 줘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놀람, 무서움, 그리고 딱히 말로 표현 못할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는 얼굴 및 눈빛이었다.
산타가 돌아가고 선물을 풀어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
열심히 이를 준비한 그루 아빠도

막상 그루가 별로 좋아하지 않자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고

캠코더를 본 나를 비롯한 다른 식구들도 의아해 했다.

그루의 감정은 확실히 복합적인 것이었다
.
얼떨결에 어색하기도 하고

산타 복장을 하고 나타난 그 사람이 약간 무섭기도 하고
...
이것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
나도 일곱살 때 유치원에서 산타가 선물 주면서 한 마디 했을 때

막 울었던 기억이 나니까
하물며 만 세 살짜리가 뭐 그럴 수도 있으리라
...
그런데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왠지 모를 '실망감'이었다.
아무래도 산타 할아버지를 그동안 떠올렸을 때엔

물론 대충의 복장이나 모습을 책에서도 봤긴 했지만
자기 나름대로 머리속에서 상상을 하고 있었을 텐데
막상 산타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 환상이 깨지면서
실망을 한 것 같았다.
나도 괜히 신경이 계속 쓰였다
.
더욱 기쁘게 해 주려던 의도가

오히려 그루의 작은 환상을 깨어 놓은 게 아닌가 싶어서...
그냥 작년처럼 그루 잘 때 머리맡에 선물 놓아두고

깨어나서 즐거워하게 해 둘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보는 것보다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다
.
특히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 경우에는
...
이건...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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