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brief comment

El Critico

spring_river 2018. 9. 3. 15:00

 

 

 

 

★☆


# 기존의 문학은 어떤 면에서 독재적 문화다.
  작품 하나에 한 명의 작가와 수많은 독자가 있다.
  독자는 작가를 열심히 추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이러한 유형의 작가는 독자의 손에 닿지 않는 
  '멀리 있는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온상이라 할 팬픽의 세계에서는
  독자가 작가고 작가가 또 독자다.
  인기있는 팬픽 작가는 재능있는 유능한 독자다.
  요컨대 독자로서의 재능이 있어야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다.
  원전, 동료의 해석, 청중 반응 등에 귀를 여는 유능한 독자여야 한다.

  ......

  위대한 예술작품은 과연 피드백 속에서 탄생하는가,
  아니면 피드백이 전혀 없는 정보진공상태에서 탄생하는가.

 

   내가 요즘 사무실에서 이따금씩 읽고 있는 책 'HIT MAKERS' 중에서
   팬픽션으로부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어느 에피소드에 관한 위 구절을
   마침 이 연극을 보러가던 그날 오후에 읽었다.

 

# 문득 생각이 나
   비평과 관련해 예전에 이 곳에 올렸던 글을 찾아보니 두 개의 포스트가 있다.

   '문화 기사의 역할'(2006/2)  http://spriverk.tistory.com/196

   '읽기가 사라져가는'(2013/3)  http://spriverk.tistory.com/622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불안감 속에 2006년 예견되었던 바가 2013년 포스트의 현상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고
   또 그 2013년 예견되었던 바가 작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으니...

 

# 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비평이나 평론이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비평에는 비평가의 지식과 취향이 반영되는데
   그 지식과 취향이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하고 깊이있는 해석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아닌   
   안목이 모자란 대중을 계도하는 듯한 태도와 지나치게 현학적인 접근,   
   다른 의견과 취향을 수용하지 않는 배타성 등으로 인해    
   갈수록 대중과의 괴리감은 커져갔다.   
   결국 죽은 비평의 시대에 이르렀고 그만큼 문화계 또한 질적으로 불행해졌다.
   그 공간은 '작은 신'들로 가득 채워진 놀이터가 되었다.   

 

#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연극,
   이 무대에는 작가와 비평가 두 사람이 등장한다.   
   비평가는 현실과 진실 대신 관객과 성공을 좇는 극작가를 비판하고
   극작가는 연극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없다고 항변한다.   

   이 둘의 대립의 전개는 마치   
   끊임없이 아비의 인정을 갈구하다가   
   결국 자신을 키운 아비를 부정하고 죽임으로써 성장하는 살부의식과도 같다.   

   그날밤 관객들이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낸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가의 혹평에 대해 변명하며(연출 탓, 배우 탓^^) 작가가 직접 선보이는
   권투사범과 권투선수에 관한 극중극 스토리 또한
   비평가와 극작가 그 두 사람의 애증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비평에 대한 담론들이 치열하게 오가는 가운데   
   역전이 거듭된다.

 

# 이 공연은 매우 독특한 기획의도에 의해 올려졌다.
   두 명의 남자 등장인물을 두 명의 여배우가 연기한다는 것!   
   극중 캐릭터를 여성으로 변형시킨 게 아니라   
   여배우가 남자의 의상을 입고 남자의 언어와 몸짓으로   
   남성 캐릭터를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이 시작되는 초반에는   
   묘한 이질감, 오히려 그에서 파생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서서히 두 여배우 연기의 흡인력에 그대로 빠져들게 된다.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연은 그대로 남자배우들이 했었다고 하던데    
   이번 버전이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소격효과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사랑을 의미할 수도, 진실을 의미할 수도, 관객을 의미할 수도 있는
   그 여인(권투사범의 아내)을 연기하는 극중극 씬에 있어서 
   그 여인을 남자배우가 표현했을 때보다 여자배우가 표현했을 때에  
   아무래도 좀더 진정성있게, 섬세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갔을 것 같은~ 
   (감정이 너무 과열된 듯한 그 부분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다소 아쉬웠지만...)


#
이 작품의 제목은 
   작가와 비평가도 아닌, (작가는 더더욱 아닌) 
   비평가이다.
   두 인물이 동일 비중인 2인극이지만, 제목은 그 중 한 사람만이다.   
   극중극 대사로도 등장했던, 이 작품의 부제
   「내가 노래할 줄 알면 나를 구원할 텐데」 라는 문구를 곰곰이 곱씹어 보면   
   이 연극은 비평가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작품이다.   
   노래를 갈망하지만 노래를 할 줄 모르는 사람,   
   노래를 할 줄 아는 이에게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투영하는 사람.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노래를 찾는 사람... 

   이 공연의 마지막 씬_
   무대 위, 비평가의 집에 작가 홀로 남았다.
   작가는 스스로 자기 노래에 대한 비평가가 된다.
   그리고 
   비평가는 무대 위에 없다. 
   그(녀)는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이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 
   바로 자신의 삶과 함께 있었던 그 노래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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