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monologue

읽기가 사라져가는...

spring_river 2013. 3. 28. 15:04




며칠전 그루 아빠가 학교에서 '연세춘추' 호외판을 들고 왔다. 1면이 백지로 되어 있는...

학보제작비가 예전처럼 등록금 고지서에 자동 포함되지 않고 선택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학보가 존폐 위기에 있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는데, 바로 이를 항거하며 발행한 그 신문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적에는 

월요일 아침마다 교문 앞에 놓여져 있던 학보를 집어들고 걸어올라가

그날 하루는 틈틈이 학보를 읽어 보는 것이 거의 일상화된 습관이었다.

사회에 대한 그리고 지성에 대한 여러 기획기사는 물론이거니와

인터넷이 없었던 당시에는 학교 당국의 잘못된 전횡을 밝히거나

학교 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알리는 거의 유일한 공식 통로였다.

지금 대학생들의 월요일 등교 풍경이 여전한지 바뀌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마 예상컨대 예전보다 학보를 대했던 그 태도는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즈음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의 폐간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영화주간지에 비해 기사의 성격이나 가격적 측면에서 매우 대중적이었던 매체가

바로 무비위크였는데 그게 폐간되었다. (정확히는 메가박스의 무가지 '매거진M'으로의 통합)

씨네21은 창간호부터 수년간 정기구독하다가

출산 이후 영화관을 찾는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보지 않게 되었고

무비위크는 회사 업무 제휴가 자주 이루어졌던 관계로

사무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던 걸 집어들고 퇴근길에 가끔 읽었었다.

2000년대 중후반에도 몇몇 영화 주/월간지들이 재정적 위기에 폐간되긴 했지만

이번 경우는 사회 변화의 양상이 반영된 좀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다.

페이퍼 매거진의 위기, 영화 저널리즘의 정체성 문제, 영화 관객들의 소비태도 변화,

이만큼의 영화시장에 전문잡지가 겨우 씨네21 하나만 불안하게 살아남아 있는 사태 등 

괜히 이런저런 상념이 들었다.

10년 넘게 뮤지컬 분야의 유일한 매거진인,

늘 누적되는 적자 속에서도 다행히 발행인의 의지로 지속 발행되고 있는,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여러 방향들을 모색하고 있는 '더뮤지컬'도 머릿속에 맴돌고...


그러던 중 엊그제 겨레신문에 실린 

'읽지 않는 시대와 작별하는 무비위크'라는 제목의, 한 영화감독의 기고 글에 시선이 갔다.


......  

당시 유행처럼 쓰이던 말이 ‘영화 읽기’였다. 
단순히 영화를 ‘본다’는 차원을 넘어서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인간의 본질과 현실의 문제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영화를 대하는 
일종의 ‘태도’였다. 
예술영화가 대중에게 소개되고,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나라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던 그 시기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의 설레는 감흥이 꿈틀대던 때였다. 
저변이 넓다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 열기만큼은 뜨겁고 진지했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영화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더 많고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되고 있고, 
더 많은 정보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한국영화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왔다.
저변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가끔 허탈해지는 기분이 들거나 그때의 분위기가 새삼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창구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거나, 
관객들의 취향이 획일화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그렇다.

비단 영화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시간을 들여서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역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너무 쉽게 배출해버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영화는 가장 간편한 시간 때우기용 오락거리이자, 
웃음과 울음으로 패키지된 감정을 소비해버리는 분출구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장 안에서는 울고 웃지만, 그 감정과 사고가 극장 밖 현실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는 것도 힘들고 빠듯한데 영화를 보면서까지 골치 아프게 머리 싸매고 싶지 않다는 
지인의 말은 공감이 가면서도 서글퍼지는 말이다.

...... 

누군가에겐 영화잡지 하나 사라지는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영화를 통해 생겨나던 생각의 연결고리들을 이어주던 소중한 끈이 끊어져버린 것이고, 
한편의 영화를 둘러싼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견해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담론들이 풍성해지면, 자연스런 상호작용에 의해 영화도 함께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영화는 대중문화로서, 예술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지녀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영화는 관객 수와 매출액으로 대표되는 외적 성장의 환호성에 가려져 
점점 더 획일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역할이 영화 저널과 비평의 몫이다. 
포털사이트의 온라인 별점이 영화에 대한 유일한 담론이 되어버릴 미래가 당장의 현실이 되진 않겠지만, 
오늘의 우리는 하나의 영화저널을 잃어버림으로써 
그 어두운 미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더이상 '읽어내려고 하지 않는' 가벼운 시대임을 통감한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그리고 문화도 읽어내려는 수고를 하지 않고 피상적인 소비에 그친다.

그 속에서 저널리즘은 아무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만큼 강해지는 소비자 위상만큼 저널리즘의 추락의 속도와 크기가 비례된다.

그리고 Review가 Criticism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Critic은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대중은 Critic의 읽어내기를 더이상 읽지 않고 

매체는 소비되지 않는 Critic을 키워내지 않고

그래서 이제는 읽어내릴 필요가 없는 문화상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읽지' 않고 '보다' 보니

시장의 확대로 소비의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페노메논도 짧은 듯하다.

옛날에는 좋은 영화나 좋은 공연을 보면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거의 일주일이 행복했었다.

요즘에는 잘 해야 그날 하루 또는 다음날... 어지간해서는 그 여운이 이틀 이상을 넘어서진 않는다.


문화 시장도 일종의 생태계이다.

어느 한 부문이 망가지면 그 여파는 모두에게 이른다.

Journal의 사라짐은 

읽을 거리가 없는 콘텐츠를 만들고 

읽지 않는, 깊이 생각하고 오래 감동받지 못하는 소비자를 만든다.

한번 악순환의 궤도에 오른 것을 바로잡기는 당연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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