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monologue

어린이 공연을 생각하다...

spring_river 2011. 6. 2. 16:47


어젯밤 그루에게 큰소리로 야단치며 혼을 냈다...
(
오늘 아침 출근길에 반성했다
.
 
내가 아닌 사람에게 나를 요구하지 말자 하고
...)

그동안 수십 번 얘기했건만

알림장 내용을 또 보지도 않아 숙제해야 할 노트를 학교에서 가져 오지도 않았고
10시인데도 숙제를 하나도 안 해 놓은 상태였다.
애써 참고 있던 화가 터진 건 그 다음 일이었다
.
학교에서 모둠별로 각자가 그린 그림을 모티브로 연극 대본을 짜 오라고 했대는데

모둠원들끼리 미리 얘기한 내용을 대본으로 쓰는 일을 그루가 맡았댄다.
대본 내용을 훑어보니, 아이들이 심심해서 어른한테 장난전화를 걸고

그 어른이 아이들을 혼내주려고 하다가 아이들이 야구방망이, 몽둥이 같은 걸로
그 어른을 (대본 표현 그대로 말한다면) 찍어내려 기절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어이없었지만,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혼나 봐라 싶어 그냥 두려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해도 상관없고 어설픈 내용을 해도 상관없는데

이건 뭐니, 이런 무시무시한 범죄 행위를 대본으로 써서
학교에서 공연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
혼나느라 울다가 자러 들어간 그루랑 지 아빠랑 얘기나누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루 아빠가 같은 그림 소재로 다른 얘기를 만들어 대본을 지어 주었다, 결국은...

오늘 사무실에서 그간 바빠서 못 봤던 '더뮤지컬' 지난호를 들쳐보다 보니

어린이 공연에 대한 특집기사가 눈에 띄었다.
글을 읽다 보니, 엄마로서 그리고 공연관계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
오래전 예술경영 공부를 할 때에 예술교육 부문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었는데
...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 때엔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아동극을 조금은 접해보다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무려 10 여년을
공연이라는 문화와는 담을 쌓고 살게 된다
.
(
어쩌면 요즘은 대학생활까지 그 기간이 연장되는지도 모른다
.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는 보통의 대학생들에게 공연 티켓값은

 
더군다나 괜찮은 좋은 작품의 티켓값은 솔직히 비싼 게 현실이다
...)
이렇게 취학 전에 공연 문화를 접한 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공연 체험 기회가 단절되는 것이다
.
물론 이유는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문화 생활을 누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니 당연히 이들을 위한 공연들도 사라지게 된다
.
한창 인성이 형성되는 그 시기의 이들을 학교와 학원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놓고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환경은 전혀 갖추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허용할 수 없는 그들의 말들과 행동들과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게임의 폭력성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
공연 얘기로 돌아가자면
,
이처럼 어른이 될 때까지 공연 체험 기회가 단절된다는 것은

공연계로서도 그리고 개개인으로서도 정말 불행한 일이다.
대본 문제로 야단은 쳤지만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것을 모티브로 공동대본을 만들어 보게 하고 시연을 하게 하는

선생님의 교육 프로그램이 굉장한 시도라 생각된다
.

그루는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문화 생활을 많이 하는 편이다
.^^
그루가 보면 좋을 듯한 공연이면 꼭 보여 주려고 하고

이런저런 전시회도 가끔 데리고 간다.
물론 딱 그 나이의 눈높이를 가지고 있긴 하다
.
유치원 때였나... '라이온킹' '태양의 서커스_퀴담' '파워레인저
'
3
개의 공연을 한두 달 내에 이어서 본 적이 있었다
.
('
라이온킹'은 예전 일본 출장 때에 보고 한국공연 들어왔을 때에 보고나서

 
그루 꼭 보여줘야겠다 싶어 티켓을 구한 공연이었고,
 '
태양의 서커스_ 퀴담'은 거금을 들여 티켓을 예매한 공연이었고
,
 '
파워레인저'는 그루랑 같이 보다가 나는 한참 졸았던 공연이었다
...)
세 공연을 다 보고나서 그루에게 물었다, 어떤 공연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
그루의 대답은 '파워레인저
'!

어린이 공연 시장의 문제가 심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높은 수익 창출의 타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인기높은 캐릭터에 기댄 공연에 한해서이다
.
뽀로로, 뿡뿡이, 파워레인저 이런 류의 공연 시리즈들
...
티켓 매출이 매우 높고 그에 버금가는 머천다이징 상품 매출도 올린다
.
요즘 동화책들을 보면 우리 어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명작류가 아닌, 굉장히 다양한 양질의 도서들이 정말 많다.
그에 비해 어린이 공연은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몇몇 대형 공연들만 살아남을 뿐

아이들의 감성을 키우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수한 퀄리티의 공연들은
이제 극소수의 극단만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루에게 '캣츠' '오페라의 유령'의 공연 경험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극단의 좋은 공연이나 국제아동청소년공연축제 작품들도
꾸준히 찾아서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미 케이블TV만화 등을 통해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어

다소 심심하고 밋밋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공연을 통한 감성 교육의 가치는 분명하다
.
공연을 보며 특별한 마음의 울림이 쌓이고 공연 나들이 경험이 축적되면

그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었을 때엔 이제 자신이 직접 공연을 찾아보게 된다.

내 기억에 나의 첫 공연 경험은

중학교 때에 본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였다.
가수 이동원씨가 지저스, 고 추성웅씨가 유다, 윤복희씨가 마리아로 출연한
,
처음으로 본 그 공연은 내게 정말 강렬한 충격이었다
.
대학 가면 무조건 곧바로 연극 서클에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바로 그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
오랜 첫 직업을 내려놓고 결국은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돌이켜 보면 그 숨겨진 뿌리가 바로 어렸을 때의 그 공연 경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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