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난처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조짐이다.
몇몇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 겸 인원 정리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3명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셋 다 정확히 내 직속은 아니지만
내 일의 Support를 해 주는 사람들이었고
착하고 열의있고 또 나를 잘 따라주던 이들이라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이 또 괴롭다.
98년 IMF 구조조정으로 많은 선후배와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그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그 당시보다 지금은 같이 생활한 시간이 짧긴 하지만
그 때의 직위에서 느꼈던 것과
지금의 직위 및 처지에서 느끼는 게
뭐랄까 다른 질감의 아픔이다.
다른 차원의 안타까움, 다른 차원의 난처함이다...
아... 기분 XX같다......
2..
퇴근녘에 접하게 된 갑작스런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와, 혼자 훌훌 영화를 보기로 했다.
며칠 전 예고편을 보고 염두에 두어 왔던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왠지 정신없이 시끌법적한 영화보다는
구도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김기덕 감독의 9번째 작품이라는데
영화를 본 뒤 리플릿에 적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놀랍게도 그동안 한 작품도 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작품마다 늘 극단의 好惡가 들끓었던 그의 영화...
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왠지 그때마다 비껴갔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약간의 부담스러움이
은연중에 작용했지 않을까 싶다.
그의 전작들에 대해서는 소문만 많이 접하고
TV 등에 소개되는 Trailer 정도가 전부인지라
사실 '봄여름...'은 김기덕 감독에 대한 나의 첫 대면이었다.
음...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상쾌한 좋은 느낌이 아니라
매우 무거운 좋은 느낌...
노승이 동자승에게 지워주었듯
감독은 영화관을 나서는 내게도 큰 돌을 등에 지워주는 듯했다.
우선, 김기덕은 정말 작가이자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몇 마디 되지 않지만 그 대사들하며,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흐름 구성 및
각각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의 연결, 배치 등이
이 사람은 정말 작가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주왕산 국립공원 내에 자리잡은 연못에
3억5천만원이라는 김기덕 사상 거금을 들여 제작했다는
물 속의 암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계의 풍경은
시체말로 뻑 갈만큼 정말 너무 멋졌다.
영화의 내용과 아주 어울리게 비유되면서...
깊은 산속 연못 속에 단아하게 떠 있는 사찰과 그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이 그렇게 함께 浮流했다.
리플릿의 내용 및 몇몇 인상깊었던 대사들을 빌어
영화의 전반을 다시 한번 떠올리자면,
봄 : 순수 속의 잔인함
"무겁습니다 스님, 이 돌을 풀어 주세요"
"평생 그 업을 지고 가게 될 것이니라"
여름 : 욕망 속의 집착
"잘못했습니다. 스님..."
"네 탓이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니라..."
가을 : 殺意 속의 고통
"저는 사랑을 한 죄밖에 없습니다!"
"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있느니라..."
겨울 : 번뇌 속의 해탈
"......"
그리고 봄......
봄에 생성과 소멸을,
여름에 사랑과 집착을,
가을에 분노와 고통을,
겨울에 비움과 평화를...
김기덕 감독은 가을과 겨울 그 어디쯤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발 한 끝을 겨울의 언저리에 위태하게 딛고서
다른 한 끝은 여름과 가을을 오가고 있는 것 같다.
겨울의 귀퉁이 한자락에 겨우 딛기 시작한 그 한 끝이
무게중심을 잃어 발을 헛딛고 무너질 수 있는...
그 한 끝에 다시 한번 힘을 줄 일이다......
200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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