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年만에
이성복의 새로운 시집을 만나게 되다...
작가의 근황이 궁금해지고 그 사람의 작품을 기다리게 된 건
이성복이 내겐 거의 유일했다.
하긴, 10年이면 그럴 만도 하다...
10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지 정말 10年만이다.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사실 이성복 시집은 내게 시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존재다.
가장 열렬하고 가장 순수했던
내 연애시절의 초반에 이성복은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성복을 읽고 또 좋아했었다.
그가 軍에 있을 적에는
그의 외로움 그리고 갈증을 덜어주기 위해
이성복의 시들을 편지 속에 자주 담아 주었었다.
가지고 있던 이성복 시집 중 한 권을 군에 부쳐 주었더니
휴가나온 그의 손에 들려진 그 시집은 이미 너덜해져 있었다.
외롭게 취직시험을 준비하던 대학교 4학년 시절에
이성복의 새 시집(바로 10年 前 그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이 나왔었다.
간만에 독하게 마음먹은 터라
시험을 위한 책 외에 웬만해선 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 때에도
이성복 시집은 책상 위에, 가방 속에 함께 있었다.
그 이후로 10年이 흘렀다.
아,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독특하게 청첩장 안에 이성복 시를 담았던 어느 한 친구는
오래지않아 이혼을 했다...
근 10年동안 궁금했었다.
펜을 접은 건 아니겠지 염려했었다.
드디어 이성복의 새로운 결실을 손에 쥐게 된 지금
가벼운 흥분마저 인다......
<2003. 7. 31 Diary 中>
위의 글을 쓴 지 두 달이 넘었건만
쉬엄쉬엄 보느라 많이 읽진 못했다.
그 중 마음에 와 닿았던 몇 편...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오늘 아침 새소리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디고
좀먹은 옷처럼
당신 떠난 자리를 봅니다
북이 아니라
나무통에 맞은 북채의 소리 같은
그런 이별이 있었지요
해는 졌는데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그런 밝기의
이별을 당신은 바랐던가요
울지 않는 새의
부리가 녹슨 화살촉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왜 일찍 일러주지 않았던가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딥니다
묵은 베개의 메밀 속처럼
나날이 늙어도 꼭 그만큼입니다
200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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