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monologue

저급함을 참기 힘들 때...

spring_river 2004. 1. 1. 11:00



일요일 오후가 되면 그루와의 외출 장소를 고민하게 된다
.
월요일부터 대부분 토요일까지도 엄마아빠랑 제대로 같이 못 놀다가

일주일 중 유일하게 하루내내 함께 할 수 있는 날이라
특히 오후시간을 함께 보낼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하루내내 집에서 책보고 장난감 가지고 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어도 오후 나절엔 외출을 해야 하는데
집앞 큰 공원은 주중에도 그루가 맨날 놀러가는 곳이라
이외의 나름대로 특별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게다가 우리가 자가용이 없는 관계로

놀러갈 수 있는 장소에 상당한 제한이 있다.
그래서 보통 만만하게 가는 곳이

집에서 버스 몇 정거장 거리의 백화점이었다
.
그런데 어제는 가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매우 좋은 날씨였고

왠지 그런 날 백화점이라는 실내 공간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
그루야, 어디 가고 싶니?" 했더니

"
그루랑 엄마랑 아빠랑 바다 가서 배 타자!" 한다.
얘가 우리 집이 무슨 바닷가 마을인 줄 아나
~
암튼 인천까지 가기는 좀 망설여져서

여의도에 가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그루를 핑계로 사실 그루아빠나 나도

한강유람선을 첨 타게 되었다
.
소감은
...
답답하고... 화가 나고
...
정말 다시한번 우리나라의 저급함에 참기 힘들었다
.
말이 유람선이지

난 한강변의 아파트들만 실컷 보다가 왔다.
물론 가끔 올림픽도로 등 한강변 도로들을 많이 달려왔지만

그다지 별로 바깥 풍경에 신경을 안 써서 잘 몰랐었다.
하긴 도로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풍경과

한강에서 양쪽 도로를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
.
후자의 경우... 단순한 주변 도로가 아닌
,
서울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
서울이란 도시가 얼마나 매력없고 형편없는 도시인가를
...
정말 말 그대로 아파트가 병풍을 이루고 있다
.
아파트에 가려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산들은

아파트 위쪽으로 그 꼭대기 정도만 간신히 보일 정도다.
한강이 지저분한 건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도 없고
...
유람선이라는 걸 탔으나

도대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
배 아래의 물을 봐도 한숨만
,
풍경을 보노라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
한강유람선이 아니라

서울 아파트 시찰선이라 함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나의 유일한 해외출장지였던

호주의 시드니 크루즈가 생각난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
시간 정도의 선상 크루즈는
정말 호주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말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자연, 예술적인 건축물들
,
도심의 첨단 빌딩들, 서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주택들
......
첨단과 자연 그리고 삶을 농축해서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
물론 어디까지나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나름대로 기획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은 그만큼의 기획력도 없는
...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

원래 서울은 한강이 아닌 청계천 주변으로 자라났다고 한다
.
한강이 수량변화가 너무 많아 개발이 어려웠던 것이다
.
그러던 중 1960년대말 서울 시장이

한강개발 3개년계획을 착수하면서 한강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한강변을 메우고 도로를 만들면서 금싸라기 택지를 조성한 것이다
.
문제는, 하천을 개수하면서

부수적으로 생기는 택지를 활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땅장사를 위해 강을 매립하게 된 것이었다.
건설업 비수기의 남는 장비와 인력을 이용해

제방을 쌓고 모래를 부어 택지를 만들고

앞다투어 아파트들을 지어 팔고...
그렇게 정치행정권과 건설재벌의 신나는 유착이

지금의 한강을 만들었다
.

그렇게 상처입은 한강을

1971
년에 태어난 나와,
2001
년에 태어난 그루와
,
그리고 한국을 찾은 외국관광객이 함께 보고 있다
...





 

2003.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