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monologue

Diario minimo를 꿈꾸며...

spring_river 2004. 1. 1. 09:30



    어제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란 책을 샀다.
    서문을 읽다 보니 'Diario minimo'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전 이탈리아 한 문학잡지의 고정칼럼의 이름으로
    에코가 그 칼럼의 책임자였단다.

    하단의 주)를 인용하면...

    디아리오 미니모(Diario monimo)
      ; 원래는 '아주 작은 일기'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일기 형식으로 쓰는 칼럼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확대되었다.


    맘에 드는 단어였다.
    어감도 그렇고, 의미도 그렇고...
    '
, 내 블로그의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그냥 잡문이자
    느리게 살기 위한 한 연습일 뿐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훈련 속에
    아주 나중일지라도 내 글이
    '
디아리오 미니모'의 수준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이르면
    무지 행복할 것 같다.

    



서문 중의 한 구절 또 인용...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류의,
비틀고 비꼬면서도 정곡이 드러나있는
그런 글들인 것 같아 매우 기대가 된다.
앞으로 며칠간 지하철 안에서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다.

회사는... 지금 무척 조용하다.
하긴 나도 이렇게 일 없는 틈을 타서 블로그를 만들었으니까...
힘차게 가동되던 엔진이 급브레이크가 걸려 멈춰서 있는 듯
좀 멍하고
하고 암튼 이상하다.
작은 실패나 오류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이성적/감성적 대응이 따르지만,
갑작스런 너무나 큰 무너짐에 대해서는
오히려 뇌와 심장이 멈춰 버린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엔 더욱 그렇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그동안도 별로 겪어보지 못한 터라
이전에 많은 실패를 맛보았던 유경험자들을
그냥 믿고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직원들은 약간의 동요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잠잠하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이 잠깐 들지 않은 건 아니다.
이 곳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계속 있는 게 맞는 걸까?
돌아갈 곳이 있으니 염치 불구하고 그냥 튈까?
다음달 월급은 나오기는 하는 걸까?......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 아직 섣불리 그런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 끝에 결심한 업종변경인데
이런 일에 쉽게 꺾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 이 일이 늘 햇빛만 있겠는가
구름도 있고 태풍(~~ ....)도 있는 거고...
큰 결심하고 뛰어든 이상
이 정도는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겨우 몇 개월만에 접을 수는 없다는 생각...
그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다른 그 무엇보다도 '캣츠'니까 가능할 거라 믿는다.
그래힘내고 정신을 가다듬자.
이 정도에 흔들리면 내가 우스워지지.
아자!



2003.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