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연극, 뮤지컬을 볼 때에
되도록이면 사전 정보를 애써 피하는 편이다.
특히 줄거리에 관련해서는 일부러 보지 않는다.
온전한 관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메트 오페라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이 역시 줄거리 부분은 일부러 Skip하지만
오페라의 경우 음악이나 작곡가, 작품 배경 등에 대해서는
아는 만큼 더 보이는지라 약간은 미리 찾아보는 편이다.
내게 공연제목부터 생소했던 '시몬 보카네그라' MET 공연은
작품에 대한 얘기들보다 주역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에 대한 이슈들이
훨씬 더 부각되어 있었다.
테너 가수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MET에서의 첫 바리톤 데뷔 무대_
이젠 테너로서 오페라를 소화하기에 나이가 들어 무리인 점도 물론 있었겠고
포장된 말들처럼 바리톤 음색을 지닌 테너로서 두 영역을 넘나든다는 의미도 있겠고...
어떤 사람의 글을 보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도밍고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그 글을 보고 물론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한국 뮤지컬계의 조승우네'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출연작품마다 순식간에 전석매진을 이뤄내는 조승우는
뮤지컬계에서 제대로 티켓파워를 지닌 유일한 인물이다.
만일 그가 나 이 작품 하고 싶어 하면
제작사들은 그 말 한 마디로 그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그러한 정도다.
은퇴할 즈음에 바리톤 역할을 해 보고 싶었다는 도밍고는
바로 그 시기에 최고의 MET 무대에서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바리톤에 대한 애정이 많은 베르디의,
바리톤이 주인공인 '시몬 보카네그로'를 공연한 것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작품은 정말 베르디의 강점답게 드라마틱함이 매우 뛰어났다.
귀에 익숙한 아리아는 없었으나 음악은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음악이 쉽지 않아 아무나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작품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테랑급 가수들이 주조역을 맡은 지라 뛰어난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다.
테너와 바리톤의 차이가 단순히 음역 뿐만 아니라 음색에도 있을진대
도밍고의 노래는 여느 바리톤 가수들의 그 묵직한 힘과는 사실 달랐다.
인터미션 때의 인터뷰에서도 바리톤을 흉내내려 하지는 않았다고 얘기하던데
바리톤 가수로서의 도밍고의 시몬이 아닌
테너 가수인 도밍고가 바리톤 영역의 시몬을 노래한 것, 그것이었다.
바리톤 가수가 시몬을 맡은 공연을 본 적이 없어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도밍고가 워낙 안정적으로 잘 해 냈기 때문에 관람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근데 좀 힘에 부쳐하는 게 간간히 눈에 띄어
이제 오페라 무대에 오래 서는 건 그에게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3막 내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엔딩에서 쓰러지기 직전의 그 눈빛까지
정말 실제인 듯(?) 도밍고의 연기력은 진짜 탁월했다.
미국 평론가들은 바리톤의 도밍고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하던데
객석의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그에게 화답했다.
특히 이 무대는 도밍고를 비롯하여 시몬 장인 역할의 그 노배우,
그리고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까지 MET 무대를 40년 가까이 지켜온 이들이 등장했던지라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커튼콜 씬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 사람들도 누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내색하든 하지 않든 기쁘기 마련인데
예술가들은(물론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들...) 정말 특별히 행복한 이들이라는...
특히, 그 반응을 목전에서 확인하기 힘든 스크린, 브라운관 배우들과 달리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공연이 끝나면 자신들을 향한 인정과 애정의 박수(때론 기립까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직접 보게 되는 건데 정말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하는...
관객들도 무대 공연의 관람이 여타 장르에서의 경험과는 다른 것처럼
배우들 역시 비교할 수 없는 무대만의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그 희열이 아닐까 하는...
링컨센터를 가득 채운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환호를 바라보는 노장들의 표정에서
당신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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