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brief comment

잠 못드는 밤은 없다

spring_river 2010. 6. 7. 12:20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고민과 문제점을 연극을 통해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
人人人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잠 못드는 밤은 없다'

한국 연극의 대표적인 연출가 중의 한 명인 박근형이 연출한 공연
_

일본의 은퇴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말레이시아의 한 리조트를 배경으로

은퇴이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소토코모리(해외의 히키코모리) 등을 통해
일본에서 살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외로움과 아픔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연극 제목에 대해 언급하자면

작가의 언급을 빌면 잠 못드는 밤은 열대야를 뜻하는 것으로
열대야는 없다, 열대에 가더라도 일본인은 일본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의 삶에 피로를 느끼며 타국에 정착해 여생을 보내는 극중 인물들 모두
일본 음악을 듣고 일본 드라마를 DVD로 보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 술을 마시지만

한결같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한다.
또 극중 대사를 빌면 꿈을 컨트롤하게 해 준다는 말레이시아 원주민들의 꿈풀이 중

'
당신이 당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잠 못드는 밤은 없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살아온 땅을 버리고 다른 땅을 찾아온 이들의 불면의 밤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
지독히 쓸쓸해 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세상과 단절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이었기에

풍선껌으로 불어진 풍선을 맞대며 서로의 상처를 소통하는
그 유일한 한 씬이 더욱 인상적이기도 했다
.
이 공연은 작품의 Tone&Manner를 잘 살려낸 무대와 조명도 좋았고

중견배우들의 관록있는 연기는 쉽지 않은 작품을 관객이 편안하게 만나게 해 주었다.
'
고곤의 선물'에 이어 다시 만난 서이숙씨의 연기는

다시 한번 그녀의 뛰어난 실력과 아우라를 확인케 했다
.

이 작품은 일본의 고도성장 신화가 초래한 사회병리현상을

그 트라우마에 희생된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옛날에 일본 소설 '천년동안에'를 처음 만났을 때에 약간 놀랬었는데

다른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들을 보아도 그렇고
일본 작품들 중엔 일본에 대한 내부 반성이 매우 지독히 느껴지거나
일본 쇠망의 조짐이 세기말적 극단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들이 꽤 많다.
이 작품 역시 일본 중장년층의 일본에 대한 거부가 오롯이 담겨 있다
.
선천적인 기질인지 교육의 효과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은 내면에 지니고 있는 한국 사람 입장에서
일본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이들의 은퇴이민이라는 현상 그리고
편안한 여생 즐기기가 아닌, 일본을 등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약간 충격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그렇게 만들었을까
...
비슷한 고도성장과 그 폐해를 한 템포 늦은 사이클로 겪고 있는 우리 나라에도

언젠가 저 비극이 찾아오게 될까...


"일본이 싫은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괴로운 일이죠, 이 나이가 돼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싫어한다는 걸 깨닫는 건.
 
일본하고는 되도록 얽히고 싶지가 않달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젠 어디로도 더 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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