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더 추가된 일정에 찾아가 본 공연은 극단 사계의 ‘라이언킹’이었다.
라이언킹은 브로드웨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으로,
거대 제작비 탓에 장기공연을 해야 하는 이유로
수년 내에 한국에서는 공연되기 힘든 작품이다.
그래서 일본 프로덕션으로라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직접 확인해 본 ‘라이언킹’은 명성 그대로 훌륭했다.
영화만큼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스펙터클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표출한 무대 연출에 그야말로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특히 1막에서 어린 심바를 쫓는 하이에나 무리 Scene,
그리고 2막에서 심바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죽은 무파사가 심바에게 나타나 자신의 약속을 다시 한번 되새겨 주는)
Scene의 연출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의상 (정확히 말하면 동물들의 가면 및 몸 전체)도 매우 놀라웠다.
일본어로 공연된 거라 정확한 가사(팀 라이스 작사)를 알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엘튼 존의 뮤지컬 넘버 음악들도 무척 좋았다.
사계의 ‘라이언킹’을 보면서 계속 곁가지로 든 생각들……
하나.
일본의 극단 사계는 전용극장을 8개나 가지고 있는 거대 조직이다.
가끔 다큐멘터리 TV물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사계의 배우 훈련과정은 매우 유명하다.
극단 사계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거기에서 계속 살아남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정평있는 극단인 관계로 웬만한 유명작품들은 모두 사계에서 공연된다.
웨버의 RUG 프로덕션이든 디즈니 프로덕션이든…
전용극장들에 실력파 극단배우들, 최고의 작품 콘텐츠들, 로열티 높은 두터운 회원 관객들…
우리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간 사계전용극장은 1200석의 하루(春), 900석의 아키(秋)
이렇게 두 극장이 함께 붙어 있는 극장이었는데,
우리도 이런 두 종류의 극장이 전용으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형극장에서는 유명 중대형 작품들을 번갈아 올리고,
중소형극장에서는 예를 들면 ‘I LOVE YOU’ 같은 작품을
오픈런으로 계속 올리는 식으로 이렇게 된다면
서울 시내 몇 개 되지 않은 공연장 대관하느라 전쟁하지 않아도 되고
기본적으로 장기대관이 안 되는 공연장 Rule 때문에
이곳 저곳 이사다니면서 공연올리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전용극장이라는 안정적 기반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둘.
내가 알기로는 ‘라이언킹’이 일본에서 공연된 지 5~6년 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공연을 본 날이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석 매진이었다.
5년 넘게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 이렇게 계속적으로 매진이라니
게다가 이곳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엔드처럼 관광객 관람수입이
큰 비율을 차지하는 환경이 아닌데, 거의 순수 일본 관객만으로
이런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라이언킹’은 ‘미녀와야수’처럼 완전 성인물과 가족물의 경계선상에 있어
작품 Value 하나만으로 성공적으로 마케팅하기에 쉽지 않은 작품인데 말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사계 측의 마케팅 전략 등에 대해 그쪽 관계자의 얘기를
꼭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연구대상이다.
셋.
역시 사계 배우들답게 기본기가 탄탄했다. 특별히 스타급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역에서 앙상블까지 모두가 실력이 고르게 우수했다.
작품을 올릴 때마다 괜찮은 배우 찾기가 너무나 힘든 우리 실정에서는
이 역시 무척 부러웠다.
넷.
‘라이언킹’은 원제작사가 디즈니 프로덕션으로, 그러니까 미국 작품이다.
(물론 오리지널 연출/안무가가 아프리카 초원을 표현하기 위해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토속 리듬 및 춤 등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사계의 ‘라이언킹’을 보고 있자니
‘라이언킹’이 일본 작품 같다는 착각이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들었다.
단순히 배우가 일본 사람이고 대사나 노래가 일본어이어서가 아니었다.
이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계에서 ‘Jesus Christ Superstar’를 가부키 버전으로 올리고 있는데
그 공연을 보고 있으면 예수가 마치 원래 일본인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그러했다.
라이언킹의 사자들이 원래 일본 사자들인 것 같았다.
해외 외국의 것을 일본화하는 데에 있어 정말 일본 사람들은 천부적이었다.
인위적인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끼게 하게금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아마 이것 역시 매우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그들의 철학, 노하우, 실력인 듯 했다.
그렇게 바라보니 정말 ‘무서운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현주소도 생각하게 만든다.
외국 작품을 라이선스 공연으로 올린 수많은 공연 중
과연 한국 프로덕션다운 ‘컬러’가 있었던가…
단순히 한국적인 디자인이나 창법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제껏 제대로 한번도 보지 못해서인지
‘한국 프로덕션다운 컬러’가 무엇인지도 의문스럽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Anyway..
'라이언킹' 관람후기로
갑작스럽게 떠났던, 그래서 많이 아쉽기도 한 2박3일 일본 방문기는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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