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영화는 아니다 ②
이 영화는 원자폭탄 터뜨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벌받는 내용의 영화다.
# 사전에 약간 공부를 하고 보면 더 좋다는 말에
오펜하이머 평전 'American Prometheus'를
이동진 평론가가 요약한 유튜브 영상을 먼저 보면서
책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이 영화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일 줄이야...
영화는 이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로 인해 그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고문을 받아야 했다.
독재자의 전쟁을 막기 위한 의도였으나
전례없는 막강한 무기를 인류에게 선물하게 된,
그리고 자신을 향한 악의 가득한 고문을
마치 자신이 대가를 치러야 할 벌이라 여기는 듯 받아내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핵실험 장면은 오히려 고요했다.
(핵실험부터 연설장면까지의 연출 특히 너무 좋았다~)
정작 영화 내내 너무 시끄러워서 날이 서게 만든 건
청문회에서 끊임없이 트집을 잡으며 몰아대는
그들의 공격의 말이었다.
# 컬러와 흑백의 교차도 훌륭했다.
각각 '핵분열', '핵융합'의 소제목 하에
오펜하이머의 시점과 스트로스의 시점을 오가며
플롯의 대가답게 스토리를 잘 교차시켜 쌓아올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무조건 이 영화로 상을 받지 않을까 벌써 점쳐질 만큼
오펜하이머 역의 킬리어 머치의 연기는 놀라웠다.
# 인상적이었던 두 장면.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면에서
'내 손에 피가 묻어있는 듯하다'고 말하자
같잖아하며 힐난하는 트루먼의 반응.
그리고
고등연구소 연못가에서 아인슈타인과 만나는 엔딩씬에서
벌을 받은 뒤 용서받았다며 미래에 상을 받게 될 때에
그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상을 주는 그들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얘기와
세상을 멸망시킬 연쇄반응이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하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표정.
p.s. 영화를 보고 바로 휴가를 갔고 또 휴가로 밀린 업무처리 때문에
영화를 본 지 열흘이 지난 지금에서야 기억을 짜내어 포스트를 남기는 중인데,
그 열흘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어이없는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가지도 아니지만...)
# 불과 몇년 전, 거의 80년만에 타국에 있던 유해를 어렵게 모셔온 독립운동가의 명예가
매우 불순하고 저열한 의도로 더럽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해군잠수함 이름의 변경 또한 검토할 수 있다는 발표에
(국방부 브리핑장에서 간만에 기레기의 꼬리표를 뗀 기자들 중)
한 기자가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껏 국제적으로 군함의 이름을 바꾼 건 딱 두 가지 경우라고.
나라가 망했을 때(소련)
그리고
무소불위 독재자가 제멋대로 바꾸었을 때(히틀러).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그를 변호한 한 과학자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조국에 봉사할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애국자이니 소련 스파이니 등등을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문제 삼으려거든 당장 저부터 재판정에 세우십시오.
저도 때로는 다수 의견이 아닌, 별로 인기도 없는 의견들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바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한 사람에게 오명을 씌운다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적 성찰도 없이 해묵은 과거 행적을 끄집어내어
마녀사냥을 여전히 하고 있는 이 나라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 스트로스는 장관 임명을 앞둔 청문회에서
개인적 원한으로 자신이 누명을 씌운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똑같은 이유로 파멸한다.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몰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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