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예술의전당 '와이키키 브라더스' 공연은
올해초 팝콘하우스 공연에 이은 두번째 버전의 공연으로
개인적으로는 굳이 발품과 시간을 들여
보고싶지는 않은 공연이었다.
그 이유는,
일단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 영화를 보았을 때의 그 감동에
이 동명의 뮤지컬이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왠지 상업적 동기가 다분한
그러니까 유명한 가요 몇 곳을 짜깁기해서
중년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안전빵 전략이지 않나 싶어
그냥그냥 가볍게 여겼었다.
또 들리는 얘기로는 초연작품 완성도도 그다지 높지 않는다고도 했고...
그래서 솔직히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그날 공교롭게 예술의전당에 일이 2개나 겹쳤고
어쩌다보니 운좋게 공연까지 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의외로 괜찮았었다.
아니, 그냥 괜찮았다기보다는
누군가 실력있는 사람의 손을 거쳐 잘 다듬어지면
꽤 괜찮은 한국적 팝뮤지컬이 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공연이었다.
물론 영화와 같은 감동을 주지는 않았지만
뮤지컬 장르다운 매력을 많이 부여한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7~80년대 유행했던 가요 및 팝송들의 약간의 개사 역시
'맘마미아'와 같은 놀랄 만한 합치성을 보여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수준은 되었고
몇몇 곡에서는 번뜩이는 재치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두번째 버전의 공연에서
새롭게 주인공에 캐스팅된 가수 이정열은
이전의 뮤지컬 참여 경력답게 꽤 괜찮은 연기와
뛰어난 노래실력을 보여주었고
특히 세 명의 여자 주요 배역들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
초연과 달리 많이 수정이 가해졌다는 2막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생각된다.
1막에 비해 다소 우울하고 늘어짐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 2막이 1막보다 우울할 수 밖에 없다.
꿈에 가득했던 청춘의 시절과, 좌절과 절망의 성년 시절이
어찌 같은 톤으로 그려질 수 있겠는가...)
한 평론가의 조언을 받아 새롭게 추가로 넣었다는
들국화의 노래들은 넘버 선정이 적합했으며
(초연 무대를 본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밋밋했던 2막의 무대도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잦은 장면전환은 눈에 거슬렸고
무엇보다도 아쉬웠던 것은
Ending 곡을 '사랑밖에 난 몰라'에서
김추자의 무인도(파도여 슬퍼말아라~)로 바뀐 점이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감명깊게 본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장면이
아마 잊을 수 없는 씬일 것이다.
나 역시 그 부분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 그 노래를 무지 좋아하게 되었고...
가슴 한 부분이 심하게 아려오는
그렇게 찡하면서도 슬픈 해피엔딩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커튼콜의 '행진' 부분 등은
맘마미아의 커튼콜을 그대로 좇아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갖는 미덕은
40~50대 중년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커튼콜 때 거의 모든 아저씨 아줌마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며 환호하며 노래를 함께 부른다...)
꽤 괜찮은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일등공신은 물론
주옥같은, 그리고 그들의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다.
팝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창작의 결과물에 대한 위험 감수율이 비교적 적은
안전한 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일정 부분 맞는 지적이기도 하다)
팝 뮤지컬의 주요 타깃이
어쩔 수 없이 40대 (낮아봤자 30대 중반 이후)
이상의 관객을 겨냥한 상품임을 감안한다면
특히 중년층 뮤지컬 관객이 일천한 우리나라로서는
이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소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성공한 팝 뮤지컬로 꼽히는 '맘마미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도 저런 팝 뮤지컬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여러 사람의 히트곡 모음이 아닌 한 사람의 곡만으로말이다.
외국에서는 맘마미아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 브로드웨이, 웨스트 엔드에선
보이조지, 빌리 조엘, 퀸, 엘비스 프레슬리
이런 사람들의 팝 뮤지컬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맘마미아'와 같은 탄탄한 구성력이 밑받침되지 않아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한 사람의 노래들로만 팝 뮤지컬을 만든다면
우리나라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은 조용필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조용필 역시 자신의 노래들을 뮤지컬로 만드는 데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 왔고
어느 한 국내제작사와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수면 위로 떠오를 시점이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탄탄한 대본과 결합되어 정말 훌륭한 한국의 팝 뮤지컬로
등장하기를 무지무지 기대한다.
그리고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역시
앞으로 많은 수정을 거쳐 더욱 좋은 작품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그러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비주얼 대신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 비주얼을 덧붙인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예전의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그리고 꽤 괜찮은 Creativ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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