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brief comment

나는 Cabaret가 좋았다

spring_river 2004. 7. 14. 15:24


뮤지컬 '캬바레'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꽤 좋았다.

나름대로 대대적이었던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실패한 이유는,

1.
이 작품은 1930년대 나치가 세력을 확장해 가던 시기의

   
베를린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베를린은 음울함과 퇴폐, 향락이 넘쳐나던
 
   
도시였다고 한다
.
   '
킷캇클럽'이라는 캬바레를 주요 무대로 한 이 작품은

   
인종차별, 성적차별(동성애)
   
사회를 억압하고 있던 이러한 체제와 관습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 군상들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따라서 어둡고 우울하다
.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는 명성답게

   
이 공연은 관객들이 끝난 줄 몰라 박수칠 타이밍조차 놓칠 정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고 했을 때에
 
  
당연히 화려한 스펙터클과 같은 볼거리
 
  
그리고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한국 관객들로서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낯선, 그래서 즐겁지 않은
  
심지어는 불편하기까지 한 뮤지컬인 것이다.
  
작품 깊이 스며들어 있는 사회성 높은 메시지 역시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했고
  
때로는 거부감도 보였으며
  
심하게는 이해도가 떨어지기까지 했다.
  
이것이 가장 큰 실패의 이유다
.

2.
일반적으로 캬바레라고 할 경우
 
  
쉽게는 쫙 빠진 늘씬하고 예쁜 캬바레 걸들을 기대하게 된다
.
  
그러나 이 작품의 배우들은 그다지 날씬하지도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분장 덕에 예쁘지도 않게 보인다.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분장과 의상이
작품 분위기에는 딱이지만
  
한국 관객들의 기대감에는 미치지 못해 실망을 샀다.

3.
작품에 적합한 무대 스케일이라는 게 있다
.
  
소극장용을 대극장으로 뻥튀기할 경우가
대부분의 문제 발생 지점인데,
  
물론 이해는 충분히 된다
.
  
높은 제작비 cost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이번 '캬바레' 오리지널팀 내한공연 역시 그 경우에 해당된다
.
  
뉴욕 오리지널 공연의 경우

  
실제 나이트클럽을 개조한 극장에서 올려
  
관객이 마치 캬바레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캬바레는

  
그 은밀하고 끈적끈적함, 친밀감을 느끼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보통의 뮤지컬답지 않게 정극적인 요소가 많아

  
연극적 몰입을 요하는 작품이었기에
  
대극장이라는 조건은 더욱 치명타였다.
  
극장 스케일의 차이에서 오는 이러한 관극 감정의 간격 역시

  
아쉬운 주요 요인이다.

나는 앞서 이 작품이 좋았다고 말했다
.
내가 좋았던 이유는
,

1.
위에서 말한 실패한 첫번째 원인이 내게는 좋았던 이유다
.
  
사회성 메시지가 잘 결합된 작품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2.
무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
  
샘 맨더스는 90년대초 이 작품의 연출을 계기로
 
  
스필버그의 눈에 띄어 '아메리칸 뷰티'의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샘 맨더스 연출 버전의 이 공연은

  
그의 스타일리쉬함이 무대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무대 디자인, 그 활용도 모두 뛰어났다
.

몇 가지 아쉬운 점은
,
여주인공 '샐리'역의 배우가 그다지 큰 흡인력이 없었다는 점
,
극장이 너무 컸다는 점 그 정도다
.

개인적으로 좋고 나쁨을 떠나

이 공연은 한국 뮤지컬의 현 주소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관객들은 뮤지컬을 관람할 때에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를 원한다.
실제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지불되는 만큼
그 기대치와 요구 또한 높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엔터테인먼트 쇼와 같은 작품 뿐만 아니라

무거운 주제의식과 재미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꽤 훌륭한 그릇임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이 받아들여질 만큼
아직까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이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화 장르 역시 상당 부분은 이와 비슷한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다양한 장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존은 할 수 있을 만큼은

 성장해 있는 시장이다.
시장이 좁다는 건

그만큼 작품 제작의 폭도 좁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이를 깨뜨리려는 시도는 필요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제작할 만한
배짱좋은 제작자는 별로 없다.
배짱도 배짱이지만

철저한 상업적 계산 없이는 아무도 투자하려 하지 않고
따라서 제작도 불가한 것이 현실이다.
'Cabaret'
와 같은 경우

이렇게 크게 무너진 다음에는
그러니까 그 시장을 확인하게 된 이후에는
향후 당분간은 한국에 Cabaret가 제작되거나
그 내한공연이 들어올 가망성은 거의 희박하다.
좋은 작품 하나가 이렇게 꺾이게 되는 것이다
.

그래서 Cabaret의 케이스가 우울하다
.
나는 이 작품을 보고나서

한두 번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외국에 나가지 않는 한
당분간 한국에서 Cabaret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