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brief comment

목란 언니

spring_river 2012. 4. 5. 16:52

 

 

   [사전적 의미]

 

   경계(境界, boundary)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두 가지 심리적 또는 사회적 체계로 분리되는 지역.

   <불교> 인과의 이치에 따라 스스로 받는 과보.

  

   경계인(境界人, marginal man)

 

   오랫동안 소속됐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금방 버릴 수 없고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아서

   어정쩡한 상태에 놓은 사람.

   나치즘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한 쿠르트 레빈(K. Lewin)이

   사용한 심리학 용어.

   우리나라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이

   경계인으로 묘사되면서부터.

   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 이후 다시 회자된 용어.

   <송두율 교수 '경계인의 사색'>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

 

 

두산아트센터의 경계인 시리즈 '목란 언니' 연극을 보다...

'철마는 달리고 싶은 것이냐' 라는 작가의 화두로,

굴곡진 역사적 산물 그리고 유난히 강한 배타의식의 결과로 적지 않은 형태의 경계인들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계인 '탈북여성'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경계 투성이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평양 엘리트 출신이었으나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자 탈북하였지만

부모를 탈북시켜 준다는 브로커의 사기에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다 날리고

남한 사회에의 부적응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재입북자금 5천만원을 구하러 일자리를 찾는 조목란.

그리고

한국사 박사이지만 실연의 아픔으로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첫째 아들

철학과 교수이지만 철학과가 없어지는 바람에 실업자 신세가 된 둘째 아들

소설가이지만 무명 생활에 지쳐 영화감독 애인의 시나리오 작업을 돕게 되는 막내 딸

한국사회에서 냉대받고 있는 문사철(文史哲)의 현실을 대변하는 이 삼남매와

룸살롱 마담으로 억척스럽게 홀로 삼남매를 부양해 온 조여사가 바로

조목란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온 경계인이 남한의 경계인들을 구원하기 시작한다.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첫째 아들의 우울증을 치유해 주고

둘째 아들을 깊은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막내 딸에게는 예술적 모티브를 선사해 주게 된다.

조목란의 순수함 그리고 당당한 씩씩함이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돈'은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 

둘째 아들은 지방대 철학과 교수로 임용되려면 5천만원이 필요하고

막내 딸은 영화감독 애인의 배신으로 각본료 5천만원이 사라지고

사기를 당해 행방을 감춘 조여사로 인해 

조목란은 (재입북자금으로 필요했던) 약속된 5천만원이 물거품이 된다.

조목란을 사랑한 둘째 아들은 엄마가 남기고 간 5천만원을 그녀에게 건네주지만...

역사는 도주하고 철학은 도피하고 문학은 변절하고

그리고 두 명의 목란은 또다른 경계인으로 불투명한 삶을 이어간다...

 

현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그러나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게 펼쳐진다.

탄탄한 극본과 감각적인 연출, 실력파 배우들의 호연, 음악극적 요소 등의 힘이 매우 컸다.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적재적소의 촌철살인 대사들과 특히 조여사 배우의 연기는 진짜 짱!

4면의 객석을 향해 다이아몬드 형태로 열려있는 무대 운영도 작품을 다이내믹하게 해 주었다.

 


 



작년말에 본 연극 '레드'를 통해 강한 인상을 받게 된 화가 Mark Rothko의 추상회화 중 2점의 그림이

요즈음 내 회사컴퓨터 바탕화면에 설정되어 있다. 

 

 

 

이 글을 쓰다가 잠깐 쉬면서 컴퓨터 바탕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이 그림들에서도 컬러 사이의 경계에 문득 시선이 머무른다.

처음에 드는 느낌은 그 경계 부분이 굉장히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그 부분이 왠지 고통스러워 보인다.

아름답지만 고통스럽다...

상생 또는 각 영역의 독자성이라는 명목 하에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 전체적 안정을 위해

고통을 강요받고 감내해야 하는 것,

이것이 '경계'의 운명이며 한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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