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_
한글 제목 '북촌방향'은 공간적 성격을,
영문 제목 'The day he arrives'는 시간적 성격을 띠고 있다.
홍상수 영화의 테마 '차이와 반복'이 이 영화 역시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변주된다.
이 영화는 북촌길, 多情이라는 이름의 한정식집, 소설이라는 이름의 술집 이 세 공간들을 맴돈다.
계속 이어지는 다음날인지 한참이 지난 이후인지 혹은 그 이전인지 모를 몇 날에 걸쳐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가는 곳만 간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정말 가는 곳만 갔었다.
연애할 때에도 카페와 식당, 술집 모두 한두 군데만을 몇 년동안 다녔고
대학 서클, 학생회 모두 각각 늘 가던 술집들만 주구장창 갔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장소'에 대한 정말이지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지금은 그 단골집들 중 남아있는 곳이 한 곳도 없고
트렌드에 따라 또는 장사 성공 여부에 따라 계속 헐리고 새로 지어지고
예전과 같은 '정 붙일 만한' 장소가 없어진다.
대학 친구들과 만날 때엔 hot place 정보에 밝은 친구 덕분에
강남과 강북을 넘나들며 유명한 맛집들을 다니고 있다.
거의 한두번씩만 가게 되는 그 집들은
음식이나 분위기에 의해 선택되고 평가되는 식사 장소로 제공될 뿐
친구들과의 만남, 함께 하는 시간들에 끈적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다.
요즘의 장소들은 여러 사람들을 받아들일 뿐
그 장소에 多情을 지닌 사람들의 여러 시간성이 고여있지 않다.
영화 속 그들의 공간들을 보며
나의 오랜 시간과 지인들이 켜켜이 쌓여 있던, 지금은 사라진 그 곳들이 그리워지는...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함께 들었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북촌 마을을 보며, 저 길 저 골목들 가고 싶다...
막걸리 마시는 장면을 보며, 막걸리 마시고 싶다...
만두 사러 나간다는 대사를 들으며, 만두 먹고 싶다...
눈 내리는 광경을 보며, 눈 보고 싶다 눈 맞고 싶다...
새벽녘까지 마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고 누군가는 거리를 가로질러 튀어나가고
오래전 다소 익숙한 광경을 보며, 다시 저런 날이 내게 올까...
홍상수... 자신의 영화와 함께 늙어가는 관객들에게
이제는 영화 속에 들어가 함께 느끼며 잠시나마 함께 살게 하는 재주까지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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