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전, 우리집에 도둑이 들어왔었다...
결혼 패물을 몽땅 털렸다...
잊어버리려고, 그리고 애써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다.
사람이 없을 때에 들어와서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올해 그냥 액땜한 셈 치자, 그렇게...
그런데
혼자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에
패물함이 나뒹굴고 있고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불켜진 안방을 목격한
그 짧은 몇 초간의 경악스러움,
혹시 아직도 도둑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뛰쳐나와
시댁에 연락하고 기다리며 놀라움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약 5분간의 두려움
이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잃어버린 물건들은 잊어버릴 수 있는데
이미 강하게 각인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혼자 현관문을 열 때엔 나도 모르게 잠깐 멈칫해지는 걸로 보아선......
그리고...
도둑맞은 그 다음날 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왠지 편치 않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바람피웠다가 다시 돌아온 배우자랑 함께 사는 기분이 아마 이런 걸까......
반드시 Private해야 하는 당위성이 침해당한 느낌...
내 가족만의 공간이 외부 침입에 의해 그 순수성이 짓밟혀진 느낌...
그렇게 우리 집이 불과 이틀 전까지의 그 우리 집이 아니었다.
집안을 감싸고 있는 공기 자체도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우리 집이 이상해..하며 얘기했더니
그루 아빠 曰, '운하임리히카이트(Unheimlichkeit)'란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이 살아왔던 세계가 한번에 무너져 버릴 때에 느끼는
섬뜩함... 친숙한 낯설음...
다행히 하루하루 지나면서 조금씩 그 느낌은 옅어지는 듯도 하지만
100% 예전의 그 느낌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엊그제 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좀전에 케이블TV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백화점에서 반지들을 보는 장면이
그냥 괜히 떠올랐다.
반지 잘 끼지도 않지만 반지가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진 거...
패물도 패물이지만 특히 결혼반지가 없어진 데에 대해 아쉬워하던 그루 아빠...
뭐 그런 생각들이 잇달아 떠오르던 중
갑자기 퍼뜩 그 생각이 났다.
'아참, 결혼반지 케이스는 내가 패물함 안에 안 뒀지 않나?'
화장대 첫 서랍을 열어 뒤져봤더니 결혼반지 케이스가 정말 거기에 있었고
열어보니 결혼반지 두 쌍이랑 내가 가끔 끼던 골드 쌍가락지가 그대로 있었다.
화장품 샘플들이랑 잡동사니에 뒤덮여 있어서 도둑이 그건 놓친 모양이었다.
되찾은(?) 결혼반지를 보며 둘이 얼마나 환호했는지...
그리고 왠지 도둑한테 이긴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리라...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기억들에서도 서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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