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저는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져 버렸고
웬만한 자리에서는 어른인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처지가 되고 보니
선배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최근 제가 도달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선배란, 성과를 보여주기보다 태도를 보여 줘야겠다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보여 줘야겠다고.
후배들이 언제 선배한테 감탄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선배의 기량이 변함없이 뛰어남을 확인할 때도
그들은 갈채를 보냅니다만,
나이 들어서도 꼿꼿한 등허리를 지닌 것처럼
정신이나 태도도 풀어지지 않고 꼿꼿할 때
후배들은 감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존경이랄까요.
저 양반은 저 나이에도, 혹은 저렇게 오래 하고도
성심을 다하는구나 하는...
언제부터인가 저는 알아 버렸습니다.
후배들이 광고를 참 잘 한다는 것을요.
광고는 사이클이 짧고
젊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젊은 후배들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과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극진한 마음을 한 때의 초심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무너뜨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젊은 그들이 갖기 어려운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므로 각오를 다지는 건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이 든 선배들의 일이라는...
광고회사를 떠난 지 6년이 넘었지만
역시 하고 있는 일이 마케팅 업무라
주요 광고회사의 사보를 온라인으로나마 꾸준히 보며
이슈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어느 한 사보를 읽다가 발견한,
그 광고회사의 제작본부장을 맡고 있는 여성 전무의 칼럼에서
나름의 공감을 느끼다......
더구나
큰 조직의 허리에서 일하다가
작은 조직의 머리에 있게 되는 경우
물론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데에 대한
부담감과 자부심이 양면적으로 그 사람을 성장시키겠지만
문득 자신이 早老하고 있다는 느낌에
당황스럽고 또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윗사람을 마구 씹던 위치에서
그 뒷담화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 될 수 있는 위치가 되었고
편한 대상이 아닌, 어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때가 찾아온다.
불행하게도 Role Model 없이 일해 온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그 역할을 해 주고 있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닿으면
아득해지기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역설적이게도
한때 자신이 욕했던 그런 위치의 사람들의 일부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그때는 몰랐던 그 사람들의, 정확히는 그 위치의 외로움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러면서 그 부류에 속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성과보다는 태도나 마음가짐이라...
사실 선배(그들은 선배가 아니라 상사라 생각하겠지만...)의 역할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선배 혹은 상사의 단점과 오류들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이 이렇게 해야지 하는 것들과 무리지어져
너무 많은 당위가 오히려 족쇄로 되어버릴 수 있는...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주어진 상황이 턱없이 부족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선배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선배의 각오가 필요하다...
자신조차 굳건히 서 있지 못한, 자꾸 흔들리는 선배의 모습은
아무 것도 줄 수가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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