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비밀이 되고,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싶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The Vagina Monologues
드디어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았다.
'드디어'라......
그게 바로 레퍼토리 공연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힘인 것 같다.
(공연을 거의 보지 않는 이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왠지 꼭 보아야 할 작품으로 각인되는 것...
어쩌다 혹 못 보고 끝나버리면
몇 달 후 또는 1~2년 후 재공연될 때까지
등에 짊어진 하나의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
그래서 재공연 소식이 들리면
여지없이 신경이 쓰이고
기어이 티켓을 사게금 만드는 것...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2001년 초연할 때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서주희의 모노드라마로 새롭게 바뀌고 나서도
늘 보고는 싶었지만 이상하게 놓치기만 했던 작품이었다.
'드디어' 보았다.
과연이었다.
한 사람의 비평가의 평가가 틀릴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비평의 평가가 틀리지는 않는다.
몇몇 관객의 평가가 전부일 수는 없지만
관객 대부분의 평가는 거의 틀리지 않는다.
'서주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동안의 거의 모든 비평과 관객의 높은 찬사가
사실이었음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아닌,
'서주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였다.
배우 서주희를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배우 한 사람만을 바라보기에 2시간은 긴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는
서주희 한 사람만이기도 하고 여덟, 아홉 사람이기도 한
여러 여자를 만나게 된다.
5살 아이에서부터 열여섯 소녀, 20대, 30대,
40대 중년, 6~70대 노파의 모놀로그를
그녀가 펼쳐낸다.
그것도 분장이나 의상의 변환 없이
맨얼굴, 하나의 의상으로
단지 즉석에서 머리 모양을 조금씩 바꿀 뿐,
그냥 흉내 정도의 연기가 아니라
너무나 놀랍게도 그녀는 완벽하게
5살 아이가 되어 있고 70대 노파가 되어 있다.
이 공연은
요즘의 10대, 20대보다도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더 깊이 와 닿을 것 같다.
지금이야 '性'이라는 게
솔직해도 되는 것이 되었지만,
우리 때만 해도
특히 여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性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문화에서 자랐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러니까 부모님 품을 벗어나기 직전까지
내가 엄마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받았던
성교육의 멘트들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딸자식을 서울로 혼자 보내려니 무지 걱정되셨을 게다...)
우리 엄마가 원래 엄하기도 했지만
그 방면으로도 특히 엄하기 그지없으셨다.
그 이후로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봤다.
가끔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너무 오랫동안 체득되어 있어 버려지지 않는
나의 性的 보수성이
아무래도 나의 엄마 때문이라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래서
20대보다도 30대에, 30대보다도 40대에
연령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일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자리 앞좌석에 40대 아주머니들 대여섯분이 오셨는데,
공연 중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관람하셨고
공연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는 얘기들이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슬펐다'는 것이다.
한평생 아무 재미도 모르고 사신
그녀들의 그 어머니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암튼
굉장히 괜찮은 작품이었고,
그리고 서주희라는 배우를 알게 된 게 무척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옮긴 이후로
이전보다 시간적 여유가 더 생기기도 했고
직업적인 이유가 부가되어
전보다 훨씬 공연이나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게 된 건
무척이나 바랬던 바이고
또 신나는 변화인 건 사실인데,
역시
좋아하는 일이 Job이 되어 버리니
그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애호관객으로서 집중하기만 하는 게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어제도 계속 공연을 보면서
지금 작품 검토 중인
모노 뮤지컬 작품과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 작품 두 개를
떠올리며 이생각 저생각을 했다.
모노드라마에 대한 관객 분위기가 이렇구나...
무대 굉장히 심플하네... 상대적으로 Cost 다운되겠다...
우리 모노 작품은 한 가지 캐릭터인데 끌어나가는 힘이 괜찮을까...
동숭홀 여기가 한 450석 정도 나오지, 우리 작품에 괜찮을까...
레퍼토리화시킬려면 그래, 이러이러한 게 필요하겠다...
서주희씨 노래 못 하나? 이거랑 저거랑 두 작품 다에 딱인데...
......제기랄...
그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작품에 집중한 게
내가 신기할 정도다.
그래도...
즐거운 게 사실이다...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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