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연예인 종류의 사람들에 무덤덤한 내가
유일하게 환장하는 사람이 바로 이승환이다.
음... 어느 정도냐면,
첫째, 아주 옛날에 그루 아빠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해도 끄떡 안 할 것 같은데
만약에 이승환이 내게 프러포즈한다면 잠깐 흔들릴 것 같다구...
둘째, 더할 나위 없이 울적할 때에도
이승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무지 행복해진다.
(그러구 보면 이승환은 정말 복받은 사람이다.
자신으로 인해 어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니...)
이승환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콘서트에 갈 기회를 놓치다가
작년 1월에 이승환 콘서트를 드디어 처음 가게 되었다.
아마 원주랑 같이 갔었지?
그리고 작년 여름 쯤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그의 콘서트를
용감하게 혼자 보러 갔었다.
물론 두번다 무지 감동 먹었었다.
최근 일 때문에 COEX와 자주 Meeting을 하게 되었는데,
그 COEX 담당자가 이승환 콘서트 티켓을 구해 주었다.
전시사업 외에도 공연사업을 시작할 생각으로
COEX에서 처음으로 자체 기획제작한 공연이 바로
발렌타인데이의 이승환 콘서트였던 것이다.
이번엔 처음으로 그루 아빠를 꼬셨다.
억지로 꼬드겨서 겨우 데리고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본 이승환 콘서트 중 최악이었다.
모두다 COEX의 문제였는데
그 넓은 곳에 좌석을 Setting하면서 뒤쪽에 단을 놓지 않아서
뒤쪽은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데다가
공연 시작 직전에는 전력 과부하로 기기 오작동이 되어
지연되기까지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음향!
본래 공연장 용도가 아닌 전시장에 공연을 유치한 까닭에
악기별 소리가 뭉쳐서 웅웅거리고 노래 부분도 찢어지고...
그래도 원래 이승환이 워낙 노래를 잘 하고
관객들 대부분 열혈팬들이라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내가 이전에 보았던 최상의 조건의 콘서트가 아니어서
난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났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로부터 받은 감동을 공유하고 싶어서
어렵사리 꼬셔서 데리고 왔는데 하필이면 왜 이번 공연이...
열이 받아서 집에 오자마자 이승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글을 올렸다.
(혹시 COEX 관계자가 볼 우려가 있어서 가명으로...)
오늘 이러이러한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는데
이러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너무 속상했다.
다시는 COEX에서 공연하지 마세요...라고.
그랬더니, 우와, Feedback이 있었다.
내가 올렸던 글의 댓글로
(이승환 회사인) DreamFactory 명의로 사과글이 있었고
그리고 이승환 혼자 글올리는 코너에도
이번 공연의 문제점들, 원인, 사과, 안타까움,
그리고 COEX에서는 앞으로 공연하지 않겠다고
직접 글을 올려 놓았더군.
하긴 이승환이 얼마나 완벽주의자인데,
아마 자기도 속상해서 잠 못 잤을 게다..
암튼,
이번 일로 잃은 것이 있다면
그루 아빠한테 이승환 콘서트 가자고 하면
이제 안 따라나설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
콘서트 끝나고 나올 때에 이승환 공연포스터를 나눠 주길래 받아와서
집에 와서 어디다 붙일까 찾다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방 붙박이장 문 안쪽에 붙일까 하고 있는데
그루 아빠가 "그걸 어디다 붙이려구? 그냥 버려!"하길래
어쩔 수 없이 그냥 버렸었다.
그 다음날,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세상에, 안방 화장대 거울 오른쪽에
포스터 속에 있던 커다란 이승환 사진을
테두리대로 오려서 떡하니 붙여 놓은 것이다.
(물론, 그루 아빠가...)
내가 깜짝 놀라서 "이거 뭐야?" 그랬더니,
"버리라고 했더니 니가 아쉬워하는 것 같길래 오려서 붙여놨다!"
......
보희 오빠, 귀엽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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