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brief comment

가족의 탄생

spring_river 2006. 5. 30. 18:19



대학 시절 우리 단과대에 네 개의 단대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공간부족이 극심하던 시절이라
두 개의 동아리가 한 방을 썼었다.
(
방이라 이름붙이기에도 뭐 한... 우리가 '토굴'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다
...)
내가 있었던 극회가 편집부랑 한 방을 썼고

늘푸른소리라는 노래 동아리랑 터얼이라는 풍물패가 한 방을 썼다.
처음에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두 동아리씩 묶어서 방 배정을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암튼... 묘하게도 각 방마다 정치적 색깔도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푸른소리와 우리 극회는 서로 친분 관계가 꽤 있는 편이었다
.
그 늘푸른소리에 나보다 세 학번 위에 김태용이라는 선배가 있었다
.
곱상한 외모에 큰 소리 낼 줄 모르는 사람처럼 늘 나즈막한 목소리
,
그리고 웃는 얼굴... 노래도 잘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
당시 노리는 사람이 꽤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예쁜 선배와 사귀고도 있었다
.
그 사람이 '여고괴담 2'를 들고 영화계에 이름을 내밀었고

TV
영화 프로그램 진행도 꽤 맡더니만, 6년만에 새로운 영화로 다시 등장했다.
태용이 오빠의 영화여서인지 크랭크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내가 괜히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오랜만의 작품인데 잘 되어야 할 텐데......

영화 시사회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언론의 평이 무척 좋았다.
더욱더 다행인 건, 언론의 평과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관객들의 평도 좋았다는 것이다
.
봐야지,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이 벌써 몇 개 되지 않는 걸 뒤늦게 알았다
.
미션 임파서블, 다빈치코드 등의 블록버스터 외화에 희생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
(
극장들은 왕의남자 덕분에 스크린쿼터 일수를 거의다 채워서

 
부담감 없이 잘 나가는 외화로 도배하고 있었다.
 
하긴... 이러는 것 보면 우리나라 스크린쿼터 계속 해야 돼
.
 
저예산영화나 예술영화는 스크린쿼터 해도 안 해도 늘 피해받긴 하지만
...)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빨리 봐야겠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그 날 영화를 보면서 보니

이 영화, 롯데 엔터테인먼트 배급이었다...
CJ
엔터테인먼트나 쇼박스 배급이였으면 이렇게까지 냉대받지는 않았을 텐데
...
아깝다... 좋은 영화인데 스크린쿼터와 대형배급사의 파워에 묻혀 버렸다
...
 
이 영화... 잘 만든 작품이었다
.
개인적으로 쪼금 아는 사람이 만들어서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게 아니구...정말로
...
소재, 주제, 구성, 편집, 연기 모두 맘에 들었다
.

인상깊었던 주변의 것 몇 가지
...

1.
문소리가 살고 있는, 그러니까 첫 번째 에피소드의 집의 생김새가 묘하다
...
   
보통의 집은 대문 열고 들어가면 바로 마당이 나오는데
,
   
이 집은 대문을 열면 그냥 긴 복도 같은 공간이 나온다

   
그러니까 집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
   
긴 복도처럼 생긴, 두세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을 지나가서야

   
마당이 보이고, 그리고 집이 있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족'이라는 것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호적상으로 엮였다고 해서 그냥 쉽게 Direct로 가족은 아니다
.
   
대문 열었다고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
   
긴 복도와 같은, 왠지 진정성이 심사받는 듯한 그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비로소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것이다
.
   (
실제로 가족같지 않은 한 사람은 나중에

   
그 복도 공간에서 집 안으로 내딛지 못하고 대문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2. "
... 나한테 왜 그래
..."
   
세 에피소드 모두 등장하는 대사다
.
   
가족 아니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또는 연인에게
...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내뱉기도 하고 속으로 삼키기도 하는 말이다
.
   
   
... 나한테 왜 그래
...
   
물론 가까운 사람에게 하게 되는 말이다
.
   
사람이라는 게 이상한 것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존중해 주고 감싸주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더 막 대하고 생채기를 낸다
.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자신은 그러면서도 그 상대가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면

   
그것을 참을 수 없어 한다
    
   
... 나한테 왜 그래
...
   
그래서 이 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
   
가해하면서 피해받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 나한테 왜 그래
...
   
유치하지만, 본전 의식 같은 게 살짝 깔려있는 말이다
.
   '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또는 내가 너한테 어떤 존재인데
... )'
   
가족간의, 연인간의 사랑이라 하면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숭고한 사랑의 모습으로 칭송되지만
   
사실은 공공연히 드러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댓가를 따지는 관계다.

   
... 나한테 왜 그래
...
   
그래서 이 말은
 
   
가족으로서의애인으로서의 의무와 권리의식이 힘을 겨루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

   
... 나한테 왜 그래
...
   
이 영화... 세 번 모두 이 질문에 대해 모두 대답이 없다
.
   
아니, 어쩌면 말하는 사람 역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
    
        
3.
마지막 엔딩, 멋졌다
.
   
정말 가족의 탄생, 가족의 재구성이다
.
   
하나의 가족이 만들어졌지만 이 구성원들... 정말 절묘하게도
...
   
서로서로 피 한 방울 안 섞였다
.
   
그런데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멋진 전복이다
!

   
사랑을 하면서 가족이라는 관계는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
   
그리고 제도로 묶이지 않을 그런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다
.
   
이 멋진 가족
... 
   
계속 그렇게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을까
......


가족의 탄생, 꼭 한 번 보시길~ 극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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