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brief comment

Perfect Days

spring_river 2024. 7. 16. 14:42

 





★★★★☆



# 도쿄 올림픽을 맞아 유명 건축가들과의 협업으로
   시부야의 화장실들을 리노베이션한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관련
   단편영화 또는 다큐 제작을 제안받은 빔 벤더스 감독이 
   도쿄를 방문했지만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 베를린에 돌아간 뒤
   공동 각본가인 일본 프로듀서의 제안에 따라
   공공 화장실을 배경으로 한 청소부 이야기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아
   그렇게 시작된 영화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러한 기획과 소재로 이런 철학적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한~

#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의 반복된 일상이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 잠시 끼어드는 인물들로 인한 작은 변화가 찾아들고 
   (물론 결은 다르지만^^) 마치 홍상수 영화와 같이
   그렇게 순환과 변주가 이루어진다.

   특별할 것 없이 단순하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의 삶은
   마치 수행같고, 묵상같고, 기도같았다.
   대사도 별로 없고, 영화는 그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왕래가 없는 듯한 여동생과 만나는 씬을 통해
   잠들기 전의 루틴인, 그가 보는 소설을 통해
   그의 前史를 짐작해 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내는 삶 자체가 감동이다.
   
   이 영화는 '야쿠쇼 코지' 배우 그 자체였다.
   내가 보았던 그의 오래전 전작은 <셸위댄스>, <실락원> 정도인데
   그 두 작품에서도 인상적이었지만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이젠 대가의 경지에 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받을 만한!
   특히,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벅차오르는 듯한, 억눌린 회한이 터져나오는 듯한
   마지막 클로즈업 롱테이크는
   잊혀지지 않는 영화 엔딩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 영화의 마지막 자막으로, 한 단어가 소개된다.
    ‘코모레비’(木漏れ日)
      :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있을 수 있지?!
   놀랍고 또 아름다운 낱말이다, 코모레비...
   그는 매일 코모레비를 사진으로 남겼고
   매일 코모레비를 살았다.
   
   (그의 몇 안 되는 대사인데)
   그가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 또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술집 여주인의 전남편이 그에게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라고 묻자
   직접 그림자 놀이를 같이 해 보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답한다.
   

# 촬영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간 감독이
   영화 주인공 캐릭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다시 되새겨지는 글이라 여기에 옮겨보면...

   [주인공 ‘히라야마’에게 보내는 빔 벤더스 감독의 편지]

   히라야마 씨에게,

   제 나라 독일로 돌아온 지금, 당신이 점점 더 그리워집니다.

   당신의 조용한 존재감, 친근한 미소,
   그리고 일에 대한 헌신은 제게 아주 소중해졌거든요.

   당신의 파란색 유니폼과 작고 푸른 차가 그립습니다.

   스카이트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당신의 아늑한 동네가 그립습니다.
   밤에 파란 불이 켜진 당신의 작은 집이 그립습니다.
   아침이면 골목을 쓸던 나이 든 어르신과
   동네 신사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허구의 인물일지 몰라도
   제겐 그야말로 실재하는 사람이 되었고,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가
   당신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있을 겁니다.

   제 아내와 저는
   베를린의 일상 속에서도 항상 ‘코모레비’를 봅니다.

   그 덕분에 당신을 생각하게 되고,
   가끔 당신을 기억하며 ‘코모레비’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코모레비’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합니다.
   매번 이 ‘코모레비’ 덕에
   나무와 잎새들, 바람과 빛에 감사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걸 제게 가르쳐 주셨죠, 히라야마 씨.

   당신이 그저 허구의 인물일 리가 없어요.
   결국 스크린 위에서만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_당신의 친구, 빔 벤더스 드림


   나 또한 히라야마 씨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덕분에
   밝게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나도 만들고 싶어졌다고...
   출근길 집을 나서며 
   빠르게 앞만 보며 걸어가지 않고
   꼭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싶어졌고,
   회사 나가기를 지겨워하며 버티는 맘으로 하루를 열지 않고
   오늘을 감사하며 일단은 그렇게
   하늘을 향해 씩 웃고 시작하고 싶어졌다고...

#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수훈은 '음악'이었다.
   그의 이동하는 차 속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빔 벤더스의) 탁월한 올드팝 곡 선정으로 이 영화는 더욱 근사해졌다.
   <접속>에 이어 매우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듣는 'Pale Blue Eyes'도 반가웠고
   'Perfect Days'도 좋았지만
   엔딩 음악 'Feeling Good'이 이번 영화에서는 꽂혔다.
   나중에 가사를 다시 들여다보니
   마지막 그의 복잡미묘한 표정이 같이 읽히기도 하고
   그의 삶과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다.

   Birds flying high
   you know how I feel


   Sun in the sky
   you know how I feel


   Reeds driftin' on by
   you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Fish in the sea
   you know how I feel


   River running free
   you know how I feel


   Blossom in the tree
   you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Dragonfly out in the sun
   you know what I mean, don't you know

   Butterflies all havin' fun
   you know what I mean


   Sleep in peace when day is done
   That's what I mean

   And this old world is a new world
   And a bold world for me

   Stars when you shine
   you know how I feel


   Scent of the pine
   you know how I feel


   Freedom is mine
   And I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And I'm feeling good



Cine Cube photo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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