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정석 작가-이선영 작곡가 콤비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봐야지 마음먹었었는데
이 작품의 작년 초연을 어찌하다 보니 놓쳤다.
재연 소식에 반가워하며 기꺼이 클릭~
역시나 좋았다!
마니아들의 선호에 맞춰 시류를 따라가며
비슷비슷하게 생산되곤 하는 다른 창작 뮤지컬과 달리
이 작가의 극본은 소재와 접근의 깊이가 남다른데, 이 작품 또한 그러했다.
드라마에 힘을 실어주는 뮤지컬 넘버들도 뛰어났고,
네불라의 자기고백같은 트럼펫 솔로로 시작되어
수아의 성장과 함께 바이올린 솔로로 마무리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2층 창고형 스튜디오 기본 무대에
마트 카트가 유원지 회전목마가 되고
법정 테이블이 뒤집어지면 감옥이 되는 등
대도구의 다양한 아날로그식 변주와 조명으로 공간을 만들어 나간 것도
이 작품의 '결'과 잘 어울렸다.
(물론 좀더 세련되게 Reproduction도 가능할 듯...)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는 강기둥 배우는 처음이었는데
잘 어울렸고 만족스러웠다.
나 자신이 너무 싫지만 싫어하고 싶지 않다는 네불라는
그만큼 다층적인 연기,
그리고 폭넓은 나이대를 소화해내는 연기가 필요한지라
연기를 특별히 잘하는 배우라면 욕심내 볼 만한 배역이었다.
(공연을 보면서도 몇몇 배우들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내가 본 회차는 여주인공 배우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약하여
두 사람의 밸런스가 자꾸 깨져서 아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초연 캐스트가 아닌, 이번에 합류한 배우라고 하던데
작품이 워낙 좋다보니
완성도 100의 상태를 보지 못한 게 괜히 더 아쉬운...
# 이 작품은 단순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고찰은 아니다.
어느 독재자의 대역으로 살았던 70대 노인과
누군가의 대체품으로 살아야 했던 20대 청년,
대역과 대리라는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상대를 거울삼아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독재자 대역과 입양아,
이처럼 누군가의 대체품이었던 두 사람이
세대를 뛰어넘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로 확장된다.
대역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순간을 향하고자 하는 바람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사회적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한 이들의 비극을 통해
주체적이지 않은 삶의 위험함을 짚어내는 경고는
주체적이지 못한 순간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꽂힌다.
그래서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 몰라.
제자리에 서서 뛰어오른다.'
작품의 오프닝 넘버인 '인생은 내 키만큼'의 가사와
살기 위한 몸부림같은 제자리뛰기 베이스의 안무를
작품의 클로징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
무대 위에 내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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