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년 전부터 한국의 클래식 시장은
최정상급 스타 아티스트나 크로스오버 방송 통해 유명해진 출연진이 등장하는 공연
그리고 바로 다름아닌
'영화나 게임 음악과 결합된' 클래식음악이 이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우려섞인 의견 또한 많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허들이 높은 클래식이라는 분야에
친숙한 콘텐츠를 통해서 입문하는 좋은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 엔니오 모리꼬네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 뿐만 아니라
자기를 좀처럼 인정해 주지 않는 정통 클래식계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과 미련을
꽤 오랫동안 지니고 살았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아니 더 쳐준다 해도 전후 이래 창작되어
가장 사랑받은 클래식은 '영화음악'이 아닌가!
유명 영화음악을 능가하는, 그만큼 사랑받고 연주되었던
현대 클래식 음악이 있었던가...
어찌 보면 이젠 영화음악이 현대의 클래식 그 자체가 되었고
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다.
잘 만든 영화음악은 단순한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니다.
훌륭한 영화음악은
교향곡과 오페라를 동시에 만든 것과 같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다.
그가 참여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서
만약 지금 저 음악이 없었다면 저 씬은 과연 어떨까 상상해 보니
정말 음악이 영화를 완성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 그의 영화음악 커리어 초반에 해당하는
유수의 이탈리안 웨스턴 영화들의 너무나도 유명한 사운드가 소개될 때마다
'아니 저것도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든 거였어?' 싶어 소름이 돋았고,
이 음악가의 영화로 명확히 알고 있고 또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시네마천국', '미션' 등이 나올 때부터는
음악의 첫 음이 저절로 눈물 버튼이 되었다.
그의 음악은 정말
적확하게 심장을 깊숙이 찌르며 파고드는 힘이 있다.
감독들에게 그의 음악은 눈에 보이는 음악이었고
관객들에게 그의 음악은 말을 건네는 음악이었다.
# 오랜 러닝타임에도 하나도 지루함 없이 푹 빠져서 보았다.
좋은 음향을 갖춘 상영관을 일부러 고른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 등 오랫동안 그와 수많은 작업을 한 쥬세페 감독이
그를 인터뷰하며 5년간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2021년 발표되기 1년 전에 엔니오가 세상을 떠났으니
그는 이 완성본을 보지 못했을까?...
그의 음악이 어떤 존재인지
함께 한 동료들과 후대 뮤지션들이 그에 대해 어떠한 경외감을 표했는지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얼마나 감동받고 고마워하는지
그가 눈을 감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그나마 그의 생전에 기획되어
그의 음악이 있기까지의 얘기들과 영화음악작업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료로 보존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원제는 'The Glance of Music'.
음악의 시선이라...
정말 그의 영화음악다운 제목인 듯하다.
엄청나게 천재적인 재능에 비해 그는 또 겸손했다.
모차르트, 베토벤에 견줄 만한 작곡가라는 감독들의 칭찬에
그 말은 200년 후에나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
200년 후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널리 연주되고 사랑받는 클래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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