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련」은 1692년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 재판을 소재로
당시 뉴잉글랜드 지방을 휩쓸었던 집단 광기와
1950년 초반에 미국을 휘몰아친 또 다른 광기인 매카시즘 사이의
보편적 유사성을 통해서
인간 본성에 내재된 문제들에 대해서 말한다.
밀러는 연속되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이 두 개의 사건이 보여 주듯이
유사하게 되풀이되고 있는 사회 현상의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촉구하고자 한다.
매카시즘의 광풍에 대해서 밀러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것이 집단적인 공포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관적 리얼리티'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었다.
그를 당혹하게 한 것은 바로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을 혼돈하는 것이며
주관적 리얼리티가 객관적 리얼리티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밀러는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전제들이
실제로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만들어 낸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것이 객관적 사실로 변해서 권위를 지니게 되는 것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는 집단적인 공포의 분위기 안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조작해 낼 수 있는 거대한 메커니즘의 존재를 파헤치면서
그것에 의해서 희생되는 개인의 존엄성의 문제로 시선을 돌린다.
밀러는 이 작품 속에서
개인들 위에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던 당시의 매카시즘이나
세일럼을 지배했던 청교도주의가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임을 밝힌다…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의 작품해설 中
# 공연실황을 보기 전에 희곡을 찾아 읽었다.
이 훌륭한 희곡이 어떻게 무대화되었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역시, 영국 National Theatre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NT Live를 통해 접했던 'Hamlet'의 연출가 Linsey Turner가
70년 전의 고전을 동시대적으로 그리고 세련되게
정말 말 그대로 Revival 하였다.
이 희곡은 애비게일의 편에서 또는 프록터의 편에서
해석되기도 할 여지가 많은 작품인데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작품 그대로 바라보게 한 균형잡힌 시각도 돋보였고,
무대 전면에 쏟아지는 물의 장막과 조명 연출은 압권이었다.
희곡에는 없는 내용으로,
마을의 지극히 청교도적인 분위기와 여기에 이질적인 애비게일의 존재가
함축되어 드러나는 예배 모습으로 공연이 시작되는데
이 새로운 추가 씬의 도입은 매우 성공적인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씬 자체도 강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단번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클 뿐더러
그 짧은 씬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공연의 흐름과도 상통되어 있었다.
집착과 원한, 복수심으로 인해 애비게일이 일으킨 작은 불씨가
세일럼에 팽배해 있던 억압된 증오심과 시기심과 욕망에 불길을 당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자기 이름을 지키고자 하는,
나아가 자신의 선함을 발견하는 프록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와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펼쳐진다.
# 이 시련이 놀랄 만큼 똑같은 방식으로 현재에도 재생되고 있는 데에 대해
작가의 통찰력과 혜안이 감탄스러우면서도 사실 너무나 한탄스러운...
# 프록터: "부인이 결백하다면"이라고요!
어째서 당신은 패리스와 애비게일이 결백한지는
결코 의심해 보지 않는 겁니까?
이제는 고소하는 자들만이 항상 거룩한 겁니까?
그자들이 하느님의 손가락같이 순결하게,
오늘 아침 태어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복수가 세일럼을 돌아다니고 있소.
그리고 저열한 복수가 법을 만들고 있소!
이 영장은 복수입니다!
-희곡 「시련」 2막 中
댄포스: 마을 사람들은 이 법정을 지지하지 않으면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그 중간 입장은 있을 수가 없소.
-희곡 「시련」 3막 中
프록터: 나는 이제 존 프록터 안에 몇 조각의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깃발을 짤 수 있을 만큼은 아니지만,
저 개들로부터 선함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하얗습니다.
-희곡 「시련」 4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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