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이 오르자 뉴욕 풍경이 펼쳐지고
정선아 배우가 캐리어를 끌며 무대에 등장한 순간,
'Tell Me on a Sunday'의 데니스가 환생한 듯했다!
그러구보니 이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다.
16년 전 'Tell Me on a Sunday'에서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런던에서 뉴욕으로 온
서른 살의 데니스는 세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는다.
그리고 이 작품 'If/Then',
결혼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온 서른아홉 살의 엘리자베스는
두 갈래로 갈라진 선택의 갈림길에서
일과 사랑, 우정, 결혼, 출산, 상실 등을 겪게 된다.
서른 살의 데니스는 약 10년 후의 엘리자베스가 되어 돌아왔고
(여전히 그녀에게 사랑은 어렵고...),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정선아 배우는
이제 실제로도 엘리자베스처럼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지닌 30대 후반이 되었다.
# 이 작품은 명실상부 디바를 위한 작품이다.
정선아 배우는 파워풀한 보컬과 섬세하고 유연한 연기로
뮤지컬계 Top 여배우로서의 진가를 확실히 입증해 보인다.
특히 2막 엔딩 즈음의 'Always Starting Over'에 이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운데
무대 위 홀로 서서 쏟아내는 그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이 공연의 최고의 순간을 맞게 된다.
# 이 작품은 'Next to Normal'의 콤비인
브라이언 요키와 톰 킷이 극본과 음악을 맡았다.
10년 전 초연된 작품임에도 세련되고 깔끔하게 잘 만든 극본에
매력적인 뮤지컬 넘버들이 가득했다.
'Always Starting Over'는
이제 뮤지컬콘서트나 오디션장에서
여배우들에게 많이 불려지겠구나 싶은^^
이번 한국공연의 무대 디자인은
좀더 심플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다소 아쉬웠다.
뉴욕의 곳곳을 나타내는 영상들과
각 씬별의 공간 연출을 너무 다이렉트하게 표현하여
(그러한 스타일은 무대적 상상력을 오히려 떨어뜨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조금 과하고 지나치게 친절했다.
'Moulin Rouge'와 동일한 번역가가 참여했는데
좀 아쉬웠던 지난번 케이스와 달리
이 공연은 극본과 가사 모두 번역이 매끄럽고 적절하고 좋았다.
일상과 가까운 작품에 더 장점이 있는 듯~
# 수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웹콘텐츠에서 유행하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_
나는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 별로던데
그 세계에서는 성공공식처럼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의
노력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과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욕망이
회빙환을 향한 열광의 이면에 투영되어 있다.
회빙환과 관련하여 얼마전 페친의 이런 글도 본 적이 있다.
전생의 모든 기억과 경험치를 지닌 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얻게 되는 우월적 경험은
기본적으로 Game의 다회차 플레이가 제공하는 감각이라고...
이 작품의 기저에도 그것과 근본이 유사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아는 걸 그때에도 알았더라면...' 하는
그때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추동력이 되는 회빙환처럼,
이 작품 또한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떠올리는 가정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든 나의 선택이며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길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엘리자베스에게, 관객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해 준다.
#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신작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갑고 기뻤던!
이 작품의 앨범은 또 한동안 나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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