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6'과 '비포선셋'을 기대하고 있었던 이유는,
모두 전작에 대한 크나큰 잔상 때문이었다.
'화양연화'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을 만큼
미칠 듯 좋아했던 영화 중의 하나였고,
'비포선라이즈' 역시 굉장히 오랜동안
마음 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던 영화였다.
1,2 숫자를 붙일 만큼의 속편은 아니지만
그 후일담을 담고 있다는 얘기에
원래 속편이라는 걸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영향이 너무 컸기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에 '2046'을 보았다.
'2046'에서 '화양연화'을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다.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주인공도 변했다 (아니 또는 변하지 않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전반적인 속도 역시 정반대다.
이성의 지배 속에 위태위태하면서도 한발자욱도 나가지 못했던
화양연화의 그들과는 달리
2046의 남녀들은 감성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관한 한,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되는 걸까.
20대의 이성이 서서히 잦아들고
감성이 더 앞세워지는...
아니면,
사랑을 잃은, 사랑에 상처받은
그것도 치명적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변해 가는 걸까...
사랑이 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변하는 것인가...
앙코르와트 사원이었던가,
화양연화의 뒷부분에 나왔던 그 사원의 석벽과 같은 존재가
2046에도 등장한다.
화면상으로는 신비하게 비주얼화되어 있던 나무 속...
그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시 막았을 때에
그 기억마저 봉인되어 지워져 버릴 수 있을 순 없을까...
사랑은... 기억이다...
상처가 깊은 만큼 기억 또한 치유되지 않는다.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다...
'2046'이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나는 화양연화가 그립다.
내 코드에 맞는 건
내 가슴을 시리게 하는 건
그것이었다.
해서
'비포 선셋'을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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