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그루 아빠가 전화 와서는
"지금 학교에서 30% 도서 세일하는데,
다빈치 코드 살까?" 하길래
"좀 있으면 사진자료와 일러스트 포함된
특별판 나온대. 그때 그걸루 살래."
대답했다.
그날 저녁, 내게 책 한 권을 내민다.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코엘료 책은 늘 표지가 예쁘다...)
"책 샀네. 제목 들어본 것 같다..." 그랬더니
코엘료 책을 잘 보는 것 같길래 샀고,
(요새는 좀 뜸하긴 하지만) 까딱하면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소릴 잘 하길래 사 왔댄다.
봤더니, 책 하단의 장식띠에 이렇게 쓰여있다.
-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
피식 웃었고,
그 다음날부터인가 3~4일에 걸쳐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우선, 글 몇 자락을 옮기면,
"도대체 뭐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지?"
"아마 비겁함이겠죠.
아니면 잘못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영원한 두려움이거나.
몇 분 전만 해도 난 행복했어요.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죠.
그런데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시 깨닫게 되자,
더럭 겁이 났어요."
'형제클럽'과 충돌이 있은 후로,
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하루하루가 지겹도록 똑같았던 건
바로 내가 원했기 때문이라는 걸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아마도......"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나는 좀더 미친 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침투해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사람들은
외부세계에 대한 방어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정작 내부세계는 방치해 둔다.
바로 그 틈을 타서 아메르튐이 내부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내적인 발전마저도 한정시켜 버린 것이다.
그들은 계속 직장에 나가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자식들을 낳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금의 내적 동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아메르튐에 의한 중독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증오, 사랑, 절망, 열광, 호기심 같은 정열들 역시
모습을 감춘다는 데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메르는 더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 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 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오후의 평온은 진저리나는 것이었고,
시간은 도통 흐르지 않았으며,
내부에 쌓여 있던 짜증은 거침없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
하나. (이전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코엘료는 역시, 세련되게 교훈을 설파하는 작가라는 것.
이 작품에서도 그는 이렇게 교훈을 얘기한다.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리고,
다수의 삶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결국엔 교훈을 심어놓는 사람들... 맘에 안 든다.
둘. 작중 '빌레트'라는 공간에 나는 오히려 매력을 느꼈다.
보통 정신병원 하면 쇠창살에 갇혀 있는
자유 의지 없는 그런 사람들, 그런 회색 공간을 떠올리는데,
난 만약에
'빌레트'와 같은 정신병원이 있다면
혹 정신병원이 정말 그런 곳이라면
나도 정신병원에 가고 싶은, 굴뚝같은 바램이 생겼다.
'빌레트'의 '미친' 사람들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통제되지 않은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광기의 세계가 제공하는 자유였다.
짊어져야 할 책임도, 먹고살기 위해 싸울 필요도,
반복적이고 권태로운 활동에 매달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정신병자였으니까...
그 곳은 바깥 세상보다 훨씬 나은, 훨씬 자유로운 곳이었다.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친 척하는 장소...
나도 그런 정신병원에 가고 싶다.
그 곳에서라면
......
보고 싶은 사람... 볼 수 있고
보기 싫은 사람... 보지 않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 하지 않을 수 있고
말하고 싶은 것... 말할 수 있고
말하기 싫은 것... 말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내적 통제, 외적 통제 없이
그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럴 수 있는 '빌레트'가 있다면......
'2004 > brief com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9년만의, 80분간의 산책 (0) | 2004.11.04 |
---|---|
화양연화가 그립다... (0) | 2004.10.25 |
꽃피는 봄이 오면 (0) | 2004.09.30 |
Crazy For You (0) | 2004.09.24 |
Art - 남자들의 우정에 관하여 (0) | 2004.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