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brief comment

목소리를 드릴게요

spring_river 2020. 6. 19. 17:05

 



퇴근길에 e-book reader로 소설(및 교양서들)을 읽어온 게
2009년말부터였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은근 꽤 많아서 내가 저 책을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 못하는 부끄러운 경험도 적지 않다. 
요새는 괜찮은 소설을 고르기가 더욱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읽고나서 좋았던 작가의 전작들을 찾아 읽고
또 발표되는 후속작도 눈여겨 챙겨보게 되는 편이다. 

그 방법이 내겐 좋은 소설 읽기의 보다 안전한 방편이었다.

 

최근 5~6년간 인상깊었던 국내 여성작가(그래서 계속 찾아 읽은 작품)들은,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진이 지니] 
김애란 [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바깥은 여름]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오직 한 사람의 차지] 
황정은 [백의 그림자, 디디의 우산]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조해진 [단순한 진심]

정세랑 [피프티 피플] 

 

*굳이 여성작가들만 따로 언급한 이유는
 여성작가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꽤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옥석을 고르기 힘든 요즘 같은 때에
 이들의 존재가 보석같아서이다...
 아, 정유정 작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젊은 작가군에 속하는 이들만 꼽아 본 거다.

 물론 그 윗세대도 많다.
 몇 달 전 읽은, 오랜만에 신작을 낸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는
 역시 문장 하나하나 급이 다르구나 느꼈었으니...

 

암튼, '피프티 피플'을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의

정세랑 작가의 신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요 며칠간 읽었다.

SF소설을 표방하고 있는데, 언뜻 떠오르는 그런 류의 SF가 아니라
현재의 부조리가 바탕이 된 미래 시제의 이야기로
이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장점이

역시 잘 살아있는 소설집이었다.

 

이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2개 소설의 스토리라인을 
(추후 기억을 위해) 되새김질해 본다면,

 

 

[리셋]

 

세상이 리셋되었다.

지구의 모든 도시를, 인류 문명을 끝장내려 내려온

거대 지렁이들의 공습.

지렁이는 제때 왔고, 궤도는 가까스로 수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서 읽은 건

지렁이들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추적하고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는데 자세히 알기 전에 다운됐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인터넷은 거의 모든 날 끔찍했다.

우주선을 타고 온 지렁이들을 내려보낸 건

미래의 나였다.

 

리셋 이후

식물들은 지표 위를 다시 디자인했다.

사람들은 지렁이들이 다다르지 않았던 지하에

다시 도시를 지었고

지열 발전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냈고

어떤 쓰레기도 도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자원은 도시 안에서 끝없이 순환되었다.

인류가 지하로 들어가고

지상을 다른 종들에게 내어준 건 괜찮은 분배였다.

원래 가축이었다가 해방된 동물들,

억눌려 있다가 다시 번성한 야생동물들...

바다를 식량창고로 여기도 풍습도 사라졌다.

땅 속 지압을 견딜 만한 다른 종은 없기에

지하 도시에는 오로지 인간 뿐이었고 좀 심심했다.

리셋시기를 살아남은 반려동물이 적었던데다

종차별 금지법 이후로는

새로 반려동물을 교배하거나 

야생동물을 길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인류는 더이상 인류를 위해

다른 종을 굴절시키지 않는다.

 

리셋 이후

발굴팀이 재고창고를 발견했을 때

재고라는 개념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수요를 한참 웃돌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들을 생산했다니

과거의 풍요로움이란...

동물원의 흔적을 찾았을 때는 여럿이 토했다.

엔터 산업 또한 대대적으로 조정되어

채널 및 물량이 대폭 축소되었다.

비행기는 긴급 자원교환이나

1년 단위 이주신청자 전송 시에나 사용됐다.

인류 최초로 섹스를 하지 않는 세대가 도래했고

광케이블을 통한 쾌감패턴으로 대체되었다.

적정 인구 수를 유지하는 게

지하도시들의 과제였으므로

쾌감패턴은 때로 권장되거나 탄압받기도 했다.

종종 지진이나 화산이 좀 방해하지만

묶인 생명도 갇힌 생명도 없이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_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할 것을 우려하는
   작가의 애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었다.

   인간이 멈추면 자연은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기도 했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현재 일어나는 변화들이 우리 삶에 고착화되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모두들 말하지만
   포스터 코로나 시대가
   지구를 위한 리셋효과를 가져올 것 같진 않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

 

베를린 의과대학 연구소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위해

3시간 정도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작은 하늘색 알약을 개발하였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 절실하게 전해야 할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도록 도와주는

3시간의 제공에 환자 보호자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그러라고 만든 약이 아니었던 이 약은

여러 갈래로 오용되기 시작했다.

 

수험생들에게는 시험 잘 보는 약으로 유행되어

그 결과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하자

시험이 지식 습득의 확인이 아닌

사고과정과 가치관을 겨루는 장으로

전세계적인 교육 개혁이 시행되었다.

물론 거기에도 빈부 격차는 뚜렸했다.

문제가 없지 않았어도

주입식 교육과 객관식 시험엔

평등한 구석이 있었다고 한탄도 했다.

 

이 약은 사진영상기기업계에 타격을 가져왔다.

연인들이 소중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함께 알약을 삼켰다.

첫사랑이 조금 더 많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개 사랑이 바래는 것은

소중한 순간들을 잊고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므로

이제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사랑은 유지되었다.

"그때 기억나?" 같은 말은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영화 팬들도 알약을 삼키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언제든 머릿속에서

재생할 수 있었다.

 

끔찍하게도 이 알약은 고문에도 쓰였다.

인간의 몸이란 고통을 최대한 잊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고문기술자들은 그 회복기능을 망가뜨렸다.

 

약을 복용했던 이들은

종종 자기 머릿속에 갇히곤 했기 때문에

기억을 머릿속으로 재생하다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도 증가했다.

현재성을 압도하는 기억들을 담아두기에

사람의 의식이란 균열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은 도리없이 기억에 감금되었다.

위험하고 고된 환경의 산업 영역에서는 

권고사항으로만 존재하던 안전장치들이 보급됐고

늘어난 설비 탓을 하며 대량해고가 이루어졌고

할 일을 잃은 사람들은 더더욱 기억에 잠겼다.

 

범죄 수사 관련자들은

의로운 목격자들의 등장이 많아져 이를 반겼다.

물론 목격자가 피해자보다 더 오래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 중견 배우가 파업을 선언한 사건이 있었다.

난독증 때문에 대본낭독자가 읽어주는 것을

듣고 암기해야 했었는데,

낭독자를 늘 대기시킬 수 없어 그 약을 복용해 온

그가 말했다.

"젊은 날의 제가 최선을 다해 연기했던

한 줄 한 줄을 다 기억한답니다.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대사들...

그런데 요즘 주어지는 건 형편없어요.

아무 감정도, 정보 값도 실리지 않은 시시한 말들만

외우자니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모조리 잊었더라면 차라리 계속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매번 처절한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대로는 안 돼요. 이건 의미가 없어요."

촬영장에서 두 세대에 걸친 배우들이 사라지자

그렇지 않아도 얄팍했던 이야기들이 더 얄팍해졌다.

자리를 떠난 배우들은 소극장을 빌려

예전의 가치있던 극들을 재공연했다.

객석의 관객들은 다시 배우들과 사랑에 빠졌다.

 

학계에서는 세대교체가 잦아졌다.

앞세대의 지식체계에 대한 체화기간이 단축되었다.

원로 학자들은 이런 것은 진짜 학문이 아니라며

외쳤지만, 젊은 학자들은 학설을 뒤집고 또 뒤집었다.

학계가 나아가는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따라잡는 데에도 알약이 필요하게 되었다.

 

약이 상용화된지 80여 년 만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굵직한 정보가

불연속적으로 빠져나가는 인지 장애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멀쩡하게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날 중요한 것을 완전히 잊었다.

기억 기능을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퇴화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뇌가 그 약을 갈망했고

약이 제공하는 가공된 충격의 상태를

벗어나지 않고 싶어 해서

기억의 입력과 출력이 통째로 엉클어진 것이었다.

3시간짜리 알약은

12시간짜리, 일주일짜리 패치로 변신했고

체내 이식형 보조기억장치도 개발됐다.

더욱 불안해진 사람들이 더욱 이에 매달렸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은 비극을 잊었다.

알약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_ 너무 가속화되는 듯한 기억력의 쇠퇴에 슬퍼하는 나는
   소설의 전반부에선 이 약을 부러워했고
   어느 배우의 스토리는 특히 공감이 갔고
   하지만 결국
   잊을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미덕의 기능임을 인정할 수밖에...

   우리는 여전히
   (아니 이제는, 일부러 더더욱)
   기억하려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잊는다는 것을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잊지 않고 무엇을 잊을 것인지
   중요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의로 선택할 수도 없기에
   나의 망각도 타인의 망각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세상도
   끔찍할 것 같고 그닥 재미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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