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monologue

악몽...

spring_river 2004. 5. 31. 22:30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
며칠전 샤워하고 옷 갈아입기 위해 잠깐 들른 것을 제외하고는

1주일만이다.
1
주일만에 다시 출근을 하기 위해 오늘 밤에는 집에 와 있다
.

악몽같은 1주일이었다
.
아니, 정확히는 내 생애 가장 벼랑 끝에 있었던 2~3일간이었다
.

바로 1주일 전 일요일
,
그날 원래는 집 앞 공원에서 그루 사진을 찍어 주려고 했었다
.
며칠 전, 그루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사 주셔서

헬멧 쓰고 오토바이 타는 걸 사진에 남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오후 일찍 집을 나서려니 너무 햇볕이 뜨거웠다
.
그래서 잠깐 애경백화점에 가서 그루 책이나 산 뒤에

오후 늦게 사진을 찍어 줘야지 하고 나섰는데
그냥 해 본 말, "그루야, 한강 가서 배 탈까?" 했다가
그루가 막 가자고 졸라서
애경백화점에 가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서 한강에 갔다
.
유람선을 탄 것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
유람선을 내려와서

지난번에 왔을 때에 그루가 무섭다고 자전거를 안 타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서 그루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번엔 타자고 한다.
2
인용 자전거를 빌렸다
.
뒷자리에 안전띠 포함 아동용 자리가 있는 것으로
...
난 물론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
해서 원래 생각은 그루 아빠랑 그루가 천천히 자전거를 타면

나도 빨리 함께 걸어가면서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자전거를 탄 그루 아빠가 그럴 새도 없이 휙 가 버렸다.
뙤약볕에 거의 40여분을 혼자 기다리다가 화가 무척 났다
.
화가 나서 혼자 집에 가 버리려고 나서던 참에

그루가 탄 자전거가 오는 걸 봤고
그루 아빠한테 막 화를 내 퍼붓고 혼자 집에 가 버렸다.
자전거가 넘어져서 그루도 넘어졌다는 얘기를 뒤로 하고
...
그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나도, 그루 아빠도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
사건인즉슨
,
자전거로 한강 주변을 신나게 돌고 돌아오는 길에

그루가 과자를 사 달라고 해서
주변 매점에 자전거를 세워 놓았단다.
과자를 사러 그루 아빠가 뒤돌아선 순간
,
자기도 따라 가겠다며 그루가 몸을 뒤트는 바람에

자전거가 옆으로 쓰러져버렸고 그루도 함께 쓰러졌다...
그루 아빠는 뒤에서 듣기에도 쿵 소리가 나는 듯 하여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러나 놀랬는지 아팠는지 그루가 한참을 울다가 그쳤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잘 놀았다.
집에 와서도, 그리고 밤12시경 잠이들 때까지도
...

새벽 2시쯤 우리는 잠이 들었고

새벽 3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그루가 머리가 아프다고 울면서 병원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
그루 아빠가 별 일 아닐 거라고 자기가 가 보겠다며

옷을 주섬주섬 입고 시댁으로 향했다.
비몽사몽으로 30분이 흘러도 연락이 없었다
.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대 목동병원에 와 있는데 CT촬영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
.
CT
촬영을 하고 응급실 밖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
그루는 좀 아파하는 듯 했으나 말도 잘 하고 기억도 또렷했다
.
별 일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한 10~20여분이 흘렀다
.
의사가 보호자를 급히 찾았다
.
우리가 뛰어가자 애기 어디 있냐고 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침대에 애를 눕히랜다.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순간 불안해졌다
.
보호자를 부르더니 CT촬영 필름을 걸면서 얘기한다
.
"
뇌출혈이예요
"......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순간을 떠올리니 다시 몸이 떨린다
.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
.
이후 설명을 듣기 위해 겨우 힘겹게 몸을 다잡았다
.
경막 뇌출혈인데, 2cm 정도로 피가 고여 있다고 했다
.
애기 머리로서는 꽤 큰 두께인데

이 부분이 점점 커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뇌가 밀리게 되어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
빨리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
뇌수술은 어떻게 진행된다고 설명을 하긴 했는데

그 말들은 여기 옮기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만 되뇌였다
.
우리가 그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

그루는 응급실 침대에 눕혀져
이것저것 기계가 몸에 꽂히고 있었다
.
불안해 하는 애를 안심시키기 위해

눈물을 애써 감추며 애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
그루야, 괜찮아, 괜찮아..." 얘기했고
그 순간 물론 미칠 것 같았다.
수술을 하려면 우선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데

지금 중환자실에 비어 있지 않다면서
현재 중환자실이 비어 있고 그 분야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빨리 찾아봐 주겠다고 했다.
찾아본 결과, 이대 동대문 병원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고

CT
촬영 복사본과 함께 우리는 앰블런스를 타고
이대 동대문 병원 응급실로 바로 향했다.
의사가 한참을 보더니
,
물론 지금 위험한 상태이긴 한데

애가 의식을 잃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우선 중환자실로 옮겨 상태를 지켜 보자고 했다.
특히 애이기 때문에 수술이 다 능사는 아니므로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을 수도 있으니 경과를 보자는 것이었다.
X
레이 사진을 찍은 후 바로 그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
원래 중환자실은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지만

그루가 옆에 가족이 없으면 안 되는 나이인지라
1~2
명의 보호자가 옆에 있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 자그마한 팔뚝에 주사를 꼽고

가슴 여기저기에 심장, 맥박, 혈압 등을 상태 검사를 위한
검사 장치들이 부착된 채로
그렇게 그루가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나와 그루아빠, 그루할아버지, 할머니가
중환자실 침대 옆과 중환자실 밖 대기실을 번갈아가며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을 뜬눈으로 보냈다.

그 상황에서

내겐 2개의
밖에는 없었다.
대학 1학년 봄 이후로 찾지 않았던 하느님
,
그리고 담당의사가 신의 존재로 다가왔다
.
15
년 가까이 하지 않았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
(
다행히 냉담 전에 오래 다녔던 덕택에 기도문이

아직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입을 타고 나왔다.)
그 이틀 동안 아마 수백 번의 기도를 한 것 같다
.
그 이틀 동안 아마 내가 태어나서 지금껏 울었던 만큼의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제발 우리 그루를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다
.
그루에게 무슨 일이 생길 양이면 차라리 나를 죽게 해 달라고

제발 나를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했다.
정말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
행여 그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뇌출혈 진전 여부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그 끔찍한 이틀을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다행히 그루 상태가 괜찮은 것 같다는 진단 하에

화요일 오후에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루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
머리가 아프다고도 하지 않고

이전과 똑같이 얘기도 잘 하고 잘 놀았다.
매일 회진을 오는 의사들 역시, 경과가 좋은 것 같다고 애기했다
.
애가 별 증세 없이 잘 노는 걸로 보아

그 부분이 다행히 더 커지지 않고
아마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경과를 보기 위한 CT 촬영은 1주일 뒤인 원래 내일 예정에서

1
주일이 더 미뤄졌다.
1
주일만에 사실상 그렇게 크게 줄어드는 건 아니고

CT
촬영을 너무 자주 하는 것도 좋은 것도 아니고
또 이번의 CT 촬영 결과로 퇴원가능시점을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뭐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정말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의사들 말로는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것도

4주 정도는 걸려야 한다고 했다.
그루는 지금 링겔도 뺐고

상처의 혈장 같은 걸 조절해 주는 약만 먹고 있다
.
기운을 많이 차렸고

침대 모서리 같은 곳에 부딪칠까 염려할 만큼

아주 활발하게 뛰어놀고 있다.
병원 안에 갇혀 있어서 답답해 하긴 하지만

그래도 잘 참고 있다.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울 따름이다
.
잘못은 어른들이 했는데

불쌍한 것이, 그 어린 것이 혼자 다 감내하고 있으니...

병원에 있으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다
.
만약 ... 했더라면 하는 여러 가정들이 끊임없이 괴롭혔고

심지어는
사고가 있기 며칠 전 내가 버스 안에서 교통사고 날 뻔 했을 때에
차라리 내가 다쳤더라면
그랬었다면 같이 한강에 놀러가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 사고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통사고 날 뻔 한 경험을 두 번 연달아 겪으면서

큰 일이 있을 수 있는 걸 액땜한 셈 치자고 속으로 생각했건만
큰 일은 내가 아닌, 그루가 당하고 말았다...
중환자실에서 그루 곁을 지키며

그동안 엄마로서 그루한테 못 해 주었던 게
나를 죄책감에 들게 하였다
.
그래서 벌을 받은 것 같기도 해서 그루한테 더 미안했다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제대로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책 같았다
.

다행히 위기는 넘겼고

가족들 모두 한숨은 돌린 채로 그루와 함께 하고 있다
.
경과가 정확히 나와봐야 하기 때문에

아주 마음을 놓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만큼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그리고 그루에게 감사, 또 감사해 하고 있다.

그루야
!
그루야
!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우리 그루야
!
빨리 말끔히 나아서 우리 그루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
...
그루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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