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고장난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 의사를 집으로 데려온 남편.
남편과 함께 온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내는 그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15년전 고문 속에 자신을 유린했던 그 남자...
그녀는 그(혹은 그일지 모르는 그 남자)를
직접 단죄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슈베르트를 되찾기 위해......
연극 '죽음과 소녀'는
지난번 인상깊게 보았던 '과부들'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또다른 작품으로,
이 연극은 원작의 총 8장 중 3개의 장을 선별하여
밀도있게 극을 풀어나간다.
두산아트센터의 젊은 창작진 지원 프로그램으로
올초 워크샵을 거쳐 본공연에 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희곡의 앞머리에 썼듯이
칠레 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랜 군부독재를 거쳐 민주화에 이른 나라라면
시대/공간적 이질감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공연에서도 언급되는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는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소녀에게 죽음이 자신은 해치지 않는다며 자기 품에서 편안히 잠들라고 유혹한다.
(원제는 Gril이 아닌 Maiden이다. 그러니까 소녀가 아닌, 처녀 혹은 아가씨이다.
한글 번역이 이렇게 된 게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음악도 연극도 소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연극 '죽음과 소녀' 역시 "용서하고 잊자, 덮어버리자, 끝내자."는 목소리로 끝없이 여자를 유혹한다.
공연을 보고나서 이 작가의 원작 희곡의 전체를 읽어 보았다.
공연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전체 희곡을 보고나니 더욱더 연출이 꽤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희곡을 모두 그대로 공연했더라면 보다 주제의 선명성은 높았겠지만
이 공연에서 그 중의 중요한 일부만을 선별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완성도를 꾀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시도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의사 역을 원작과 다르게 실체를 보이지 않게 하면서
의사의 목소리와 진행자의 역할을 한 명의 배우에게 부여한 것 역시 여러 모로 그 의미 및 효과가 컸다.
사실적으로 쓰여진 희곡의 무대를 하얀 테이블 다섯 개와 의자 두 개로 상징성있게 변형하며 표현한 것 또한
미니멀함 속에 극의 밀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
공연의 세 배우들도 무대를 장악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잘 내밀화 표현하여 인상적이었다.
이 연극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용서와 복수...
그룻된 것들은 분명히 단죄되어야 한다.
후대에 역사의 평가를 받게 한다? 그걸 왜 죄없는 후대에 떠넘기지?
그릇된 것들에 대해서 단죄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의 폐해는 그동안의 우리 나라 역사가 뚜렷이 보여준다.
친일에 대해 친독재에 대해 아무런 단죄 없이 지나갔고
가해자는 대를 이어 잘먹고 잘살고 있고 피해자는 대를 이어 유무형의 고통 속에 있다.
심지어는 정권이 바뀌어도 '화해'라는 미명 속에 뉘우치지도 않는 이들을 멋대로 용서한다.
작금의 정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태들을 보면 더욱 가관으로 악순환 그리고 확산되어 있다.
자격이 없어도 잘못을 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전혀 묻지 않으니
죄의식 없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심지어는 더욱 대담해진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게 대체 누구의 안정인 건지...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포함된 그들 집단 입장에서의 안정?
그 안정이 역사의 후퇴라면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안정, 단호히 거부한다.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해 줘야 한다?
글쎄... 특히 국가적/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 별로 뉘우치는 것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그건 그때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 그런 사람들을 보기나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과연 죄를 끈질기게 묻지도 않고 죄지은 댓가도 치르지 않는데 그들이 뉘우치기는 할는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근데 불행히도 우리 나라 사람들 너무나 쉽게 잊는다.
그리고 쓸데없는 곳에 불필요한 측은지심 느끼고 중요치않은 이상한 곳에 꽂혀 광분하여 마녀사냥 한다.
난 그저 合理적인 세상을 바랄 뿐이다.
너무나도 분명한 불합리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판을 치는 세상이 진저리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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