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brief comment

나의 연극열전 두번째 – 남자충동

spring_river 2004. 4. 9. 14:18


가부장적 사회의 남자들은 강해지기를 강요당한다.
그러나, 최강자는 극소수다.
대부분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살 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강하지 못하다는 좌절감으로
폭력충동에 사로잡힌다.
강한 남성상은 짐이다.
그 짐을 벗어버릴 때가 되었다.
이 작품은 가부장 지향의 남자들이 강함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공격(폭력) 성향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다.
‥‥‥
강함에 대한, 폭력에 대한 환상을 벗겨버리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들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희생시켜 강자에 봉사한다.
모두 강자가 되고자 할 때, 반사이익은 최강자에 집중될 뿐이다.
우리는 미화된 폭력, 즉 강자 이데올로기에
그 얼마나 희생당했던가!
‥‥‥
                                                      -
저작의도




하나. 남자다움에 관하여

  
난 늘 생각해 왔었다
,
  
가부장제도의 피해자는 여성 뿐만이 아님을
.
  
심한 가부장적 태도를 보이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그의 등에 짊어진 엄청난 짐이 동시에 보이기에
  
한심스러우면서도 측은하기까지 했었다.
  
난 극단적인 페미니즘은 그 반대에 대한 것만큼 혐오하는

  
그냥 평범한 정도의 페니미즘 소유자다.
  
가부장제는 정말 바보같은 짓이다
.

  
나는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을 덜 받고 지금까지 지내왔음을

  
고맙게(이상한 표현이지만 고맙게든 다행이든) 생각한다.
  
집에서도 예를 들면 오빠는 공부하고 나는 부엌일하고 하는

  
그런 대우를 전혀 받지 않고 자랐고
   (
공부나 하라고 집안일을 아무 것도 안 시킨 바람에
   
요리나 살림에 빵점인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대학에서도 역시 별로 심히 열받을 만한

  
그런 조건에서 생활하지는 않았다
.
   
거의 남녀 동수였고 여자들이 더 똑똑했으니까
...
  
직장생활 역시 여자들이 아주 많은 회사에서 시작했고

  
그 곳은 내가 입사할 당시부터는 승진 관련해서도
  
남녀 차별이 별로 없었고   
  
거의 동등한 조건에서 일했고 대우받았기에

  
보통의 회사 여자직원들이 느끼고 사는 서러움은
   
다행히 받지 않았다.
  
또 다행히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편을 만나서 살고 있고

  
나의 아들 역시 그렇게 키울 것이다.
  
약간은 가부장적인 시아버님이 날리시는 이따금의 멘트 때문에

  
좀 껄끄러운 마음이 들 때는 있었다.
  
예를 들면, 그루가 돌 되기 전에는 내가 인형을 많이 사 줬다
.
   (
이유는, 내가 인형을 좋아해서
...)
  
그 때마다 아버님이 한마디씩 하셨다
.
  
남자애한테 무슨 인형을 사 주냐고
...
  
내가 인형을 안 사 주게 된 것은 아버님의 말씀 때문은 아니고

  
진짜 그루가 인형을 별로 안 좋아해서였다.
   (
아무래도 진짜 남자 여자의 태생적 기질이 있긴 한 건지
...)
  
사회적 측면에서의 가부장은 그냥 생략한다
.
   
너무나도 많은 것을 얘기해야 하니
...
  
남자다움, 여자다움... 다 웃기는 얘기다
.
  
그런 걸 열올리며 얘기하는 사람 중에

   '
사람다운' 사람, 못 봤다.


. '남자충동' 작품에 관하여
 

   
조광화
.
   2000
년엔가 조광화(, 연출) '미친 키스' 본 기억이 있다
.
   
대학원 연극비평 리포트를 위해 본 공연이었는데

  
그 때의 리포트를 뒤져 잠시 몇 구절 옮겨본다.

  
......
현대인의 정신적 불구, 정서적 공황을 다룬
  
이 극의 인물들은 진정한 만남을 열망한다.
  
의무로서의 만남이 아닌, 소외를 낳은 만남이 아닌,
  
그리고 육체적 접촉만이 아닌 그러한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이들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
   
자신에게서 부재한 것을 타인을 통해 얻으려는 이들은
  
서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자신은 사랑이라 믿는, 또는 정열이라 믿는 그것이
  
사실은 '집착'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신념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은,
   '
집착'에는 그 출발이 되었던 사랑 또는 정열의 본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크고작은 '집착'에 매달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그것을 버렸을 때에 감당해야 할 공허함,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이라 그리고 정열이라
  
굳게 믿으면서......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조광화의 그 공연의 감흥, 충격이
  
적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전작이었던 '남자 충동'
,
   
초연 당시 굉장한 화제와 열광을 몰았었던 '남자 충동'

  
드디어 보게 되었다.
   
역시 대단한 작품이었다
.
  
극본도 탄탄하고

  
무대  연출도 굉장히 깔끔히 잘 계산된 것이었으며

  
보기 드물게 초연 때의 배우 거의 모두가 
  
다시 뭉쳐 만들어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력 및 조화 또한 모두 좋았다.
  
특이한 점 하나는,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
  
음악이라는 구성요소를 굉장히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
  
거의 Main Theme처럼 사용된 노래는

  
공연장을 나서면서도 절로 흥얼거리게 될 만큼 우수했고
  
극의 진행에 따른 음악 역시 잘 고려되어 있었다.
  
역시 90년대의 대표작품에 들 자격이 있는 좋은 공연이었다
.

   
. 배우 안석환에 관하여
 

  
첫번째 연극열전 얘기에서 조재현을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안석환 역시 내게(그리고 그루아빠에게도)
  
그는 '배우'이다
.
   96
년엔가 97년엔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하는

   '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배우 안석환을 처음 만났다.
  
그 공연으로 인해 나와 그루 아빠는 안석환의 팬이 되었다
.
  
공연을 본 지 1년쯤 흐른 어느날

  
그루 아빠가 신촌의 어느 일본어학원에서 안석환을
  
우연히 마주쳤단다
.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안석환한테 다가가 팬이라고 인사하고

   (
매우 부끄러워 하는 그에게) 사인까지 받아 왔을 정도다.
   '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
남자충동' 초연시의 이장정으로 그는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고
  
그 이후 꽤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나에게 그는 (연극)'배우'이다.
  
이번 공연 역시 안석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커튼콜에 마지막으로 그가 나올 때에

  
나와 그루 아빠는 팔을 번쩍 들어 미친 듯이 박수를 보냈다.
  
안석환, 그는 정말 최고의 배우다
.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서 계속 그리고 꼭 보고 싶은

  
몇 안 되는 배우 중의 한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