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brief comment

나의 연극열전 첫번째 – EQUUS

spring_river 2004. 3. 6. 19:09


 

   너무나도
   강렬하여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때의 느낌, 인상, 충격이
   여간해선
   지워지지 않는
   그런 경우가 있다.
   내겐
   연극 '에쿠우스'가 그랬다.



아마 90 12월 내지는 91 1월쯤의 겨울이었다.
한수와 인준이, 그러니까 극회 동기들과 함께 갔었다
.
심지어는 그 때 그 실험극장 앞마당 풍경까지 기억난다
.
조재현이라는 신인배우가 알런을
,
그리고 조명남이라는 중견배우가 다이사트를 맡았었다
.
(
최근에 확인해 보니, 그 때의 연출가가 김아라였다
)
내가 스무살 남짓 때에 본 그 때의 에쿠우스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도 한참동안이나 별로 유명세를 타지 않았던

조재현이라는 배우를 
난 그 에쿠우스 때문에 꽤 괜찮은, 인상적인 '배우'

기억하고 있었다.
중대 예술경영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에

아마 나보다 한 학기 늦게 같은 대학원 공연영상학과에
조재현 그가 입학했었다.
가끔 김기덕 작품이나 독립영화류

그리고 TV 드라마 조연 정도로 출연하고 있었던 그에게

그다지 연예인 대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업 전후 가끔 대학원 사무실에 들르면

사무실에 앉아 다른 대학원생들과 잡담하고 있는 그를
가끔 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 대하듯 그에게 인사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난 나를 지배하고 있는 스무 살 때의 
그의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
적어도 나에게 그는 '배우'였다
.

작년말, 연극열전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

난 굉장히 흥분했었다.
지난 시절 나를 감동시켰던 연극
,
그리고 꼭 보고 싶어 했었지만 놓쳐버리고 말었던 작품들이

2004
년 한 해동안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진다니...
여러 편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패키지 티켓까지 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작품, 에쿠우스
...
언젠가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다
.
어린 나이에 보았던, 나를 휘어잡았던 그 작품이

13
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또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되었었다.
그리고 게다가 13년 전 내가 본 알런이었던

조재현이 다시 알런을 맡았으니...

관람일자를 예약하고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에쿠우스' '신의 아그네스'
 
상당히 많이 비슷한 것 같다는
...
7
마리의 말의 눈을 찌른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정신과 의사와 만나게 된 알런,
수녀의 신분으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스스로 죽인 사건으로

정신과 의사와 만나게 되는 아그네스,
 작품 모두 그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두 작품의 정신과 의사 모두
그 과정을 통해 자유로의 갈망, 신이라는 존재의 긍정과 같은
이전의 자신에서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뜬금없이

꽤 흥미있는 포인트를 발견했다.

2004
년에 본 EQUUS

기대가 컸던 탓일까,
솔직히 내 기대에는 별로 미치지 못했다
.
조재현의 연기 자체는 뛰어났지만

너무나도 '능숙하게 연기를 잘 하는' 알런이었다.
알런의 나이 17
,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소년으로서의 알런
,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 표현이 아닌

그 시기의 젊음이 보여 줄 수 있는
절망감, 그리고 섬뜩한
狂氣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건 30대 후반의 조재현이 아무리 연기를 잘 한다 해도

결코 표현할 수 없는, 흉내낼 수 없는
그 나이 또래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아우라인 것을...
보는 것만으로 위태해 보이는
,
그리고 기성세대인 어른의 가식을 꿰뚫을 때의 섬뜩함

내가 알고 있던 그 알런은 없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다이사트
.
알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공연과 달리
,
원래의 에쿠우스는

알런과 다이사트, 이 두 사람의 팽팽한 관계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
이번 공연은 원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연출되었으나

불행히도 원래의 다이사트역을 맡았던 김흥기씨가
2번의 공연을 올리고 쓰러지는 바람에
(
그동안 다이사트를 오랫동안 맡아왔던) 이승호씨가
급히 투입되어 재개된 공연이다.
그렇게 되는 바람에 원래의 연출의도 및 작품의 균형이

내가 보기엔 깨어져 버렸다.
이승호씨가 표현한 다이사트는

단순한 해설자로서의 다이사트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이사트의 그 많은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기에도 벅찬 듯 보였다
.
다이사트와 알런과의 관계가 제대로 극을 지배해 나가지 못하니

그냥 이 에쿠우스는
(
그동안의 연기력으로 인정받아 온, 그리고 대중적 스타가 된)
조재현의 에쿠우스였다
.
차세대 연출가로 주목받고 있는 김광보씨 역시

이전의 작품 '프루프'에서와는 달리
매우 밋밋한 연출을 보여 주었다.
역시 연출가도 자신의 주력 분야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보통의 정극과 실험극류의 장르의 연출은 분명 달라야 한다
.

공연장을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스무살에 본 에쿠우스
,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강렬함으로 남아있는 그 에쿠우스로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어도 좋을 뻔했다는 생각...
그리고
,
어떠한 노련함으로도 100% 표현될 수 없는

그 젊음이라는 이름의 아우라에 대한 재확인...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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