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monologue

상념으로 치유하기_ 1

spring_river 2009. 5. 20. 18:30

1.

공적인 관계엔
언제나 갑과 을이 있다.
내겐 을로서 살아가는 비중이 90퍼센트 정도.
을에겐 을에 맞는 삶의 자세가 있다.
아픔에 둔해지는 것이 그것이다
                         - "
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에서
        


일을 하는 관계에서 설레임을 오래 유지시키려면
권력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나 약자가 아닌
오직 함께 일을 해 나가는 동료임을 알 때
설레임은 지속될 수 있다.
                         - "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이제 이곳 생활도 어느덧 만 6년을 지나 7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10
년간의 옛 직업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새로운 곳에 몸을 담았을 때에

초반 1년간 지인들로부터 어김없이 듣게 되었던 소리가
"
어머, 얼굴이 너무 편안해졌어요! 인상이 굉장히 부드러워진 거 알아요?" 였다.
"
진짜요? 잘 모르겠는데..." 대답했지만, 원래 얼굴은 남이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니
...
나와 비슷한 케이스인
,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오랫동안 일하다 최근 2~3년전에 이 업계로 옮긴

대학원 동기였던 그 언니 역시 이직하고나니 주위에서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하더란다.
세월을 견뎌낸 방식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대부분의 광고대행사 사람들은 얼굴에 날이 바짝 서 있다. 아니, 온몸에 날이 서 있다.
그때는 나도 몰랐고 아마 현재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
그런데 정작 나와서 바라보면 그게 보..
.
또 그런데 그곳에 있으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된다
...
지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무지막지한 업무의 연속, 새로움에 대한 강박
,
광고주에 대한 고강도의 시달림, 경쟁 PT의 압박 등등
...
나의 경우는 을로서 살아가는 비중이 80% 정도였다
.
진짜 거지같은 광고주들을 너무 많이 봐오며 시달리며 견뎌내느라 사실 많이 강해졌다
.
(
'광고주'란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지만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그네들이
인가?... 정확히 말하면 그네들은 그냥 Client...
 
그런데 종 부리듯 신나게 주인 행세를 하고, 그마저 짤라버리겠다고 협박하며 괴롭힌다
.)
사실 그 속에 있을 때엔 몰랐다
.
그런데 다른 분야에 와 보니 내가 꽤 단단하고 강한 심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 지난 10년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고마움도 느꼈다.

그런데
...
최근
......
일련의 몇몇 사건들을 거치며 일주일 넘도록 분하고 열받고 자존심상해 씩씩거리며

문득 깨달았다.
10
년간 다져졌던 ''로서의 자세가 그간 7년동안 나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
웬만한 핍박에는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강하고 단단해진 심장이

그새 물렁해져버렸다는 것을
...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되어버렸지
...
내적 신경은 외적 신경과 정말 다르나 보다
.
수영이나 자전거 같은 경우엔 배우고나서 몇 년을 쉬다 갑자기 하게 되어도

그 운동신경이 다 기억을 하고 있대는데,
대체 이 놈의 것은 무려 10년이나 수련했는데도

좀 몇 년 쉬었다고 이렇게 싸그리 무너져버리다니
...
-
.
내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다
.
이곳에서도 가끔 다른 관계사 or 제작사의 작품을 마케팅 대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러 계약서에 '' '' 이라는 표현 대신,
'
제작사' '주관사' 라는 표현을 고집해서 쓴다
.
그리고 기본적으로 '대행'이라는 건 그 사람이 그걸 해낼 능력이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요청하는 거다
.
어떠한 Goal 달성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일하는 이들이라면

그들은 갑과 을이 아니라 Partner이다.
금전적 보상이 약하고 단위 자체가 틀린, 그래서 일에 대한 애정만으로 일하는 이곳에서는

공동 목표를 위해 보다 진심으로 보다 열정적으로 성과물이 나오기에는
적어도 Partnership이 전제되어야 한다
.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무리 혼자 주저리주저리 한탄해도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의 자세가 이곳 역시 필요하다는 거다.
적어도 10%... 앞으로 20~30%가 될 수도 있고
...
Zero
에 가깝게 다시 되돌아와버린 ''의 자세를 다시 10%, 20%로 끌어올리는 게

나의 숙제다
......



마음에도 근육이란 게 별로 없는지...
늘 빌빌거리며 작은 고민에도 어이없이 뼈가 부러지고
한마디 말에도 쉽게 생채기가 생긴다.
구멍 숭숭 뚫린 자존심은 이미 골다공증을 앓은 지 오래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
쉽게 무너지지도 않고 금세 지치지도 않는...
튼튼한 마음,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 "
나이는 생각보다 맛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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