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꼭 보려는 작품은 보기 전에 사전 정보를 일부러 차단하는 편이라
이 '밀양' 역시 어떤 스토리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영화를 보았다.
포스터들에서 그냥 느껴지는 것처럼
굉장히 평범하지 않은... 상처 많은 두 사람의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 이런 이야기였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스토리 흐름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바람에
사실 영화를 100%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회의 끝나고 헐레벌떡 영화관에 늦게 도착해서 약 10분 정도 앞부분을 놓친 데다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그냥 영화와 다른 많은 상징과 생각할 꺼리들이 있는데
최고의 연기를 보여 주었다고 찬사를 받는 전도연, 송강호의 연기도 제대로 못 느끼고
그러한 것들을 거의 놓친 채 그냥 멍하니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머리와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한 번 더 다시 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여기에 블로그 남기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요즘 스케줄에 과연 한 번 더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 자신이 없고 해서
그냥 쓰기로 했다... 영화 감상평이라기보다 영화 보면서 그냥 든 생각들이다.
근데... 진짜 다시 한번 더 봐야 하는데...
일단 종교에 대해...
사실 난 종교라는 게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복'신앙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교회나 성당에 나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빌고
그리고 잘못했던 걸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위안을 받는다.
내게도 그랬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고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교 1학년 여름까지 약 12년반을 성당을 다녔는데
그 시절을 돌아보건대 내가 성당을 오랫동안 다녔던 원동력은 2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복'의 의미였다. 크고작은 시험에 시달렸던 학창시절에
내가 성당에서 주로 빌었던 건 시험 잘 보게 해 달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한 주라도 성당에 나가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왠지 시험을 못 치를 것 같은
그런 생각까지도 아마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약간 사소하지만... 미사 때마다 오르간 반주를 했던 관계로
그러니까 내겐 중요한 역할이 있었고 그만큼 책임이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근처의 연희동 성당으로 교적을 옮겼는데
한 3~4달 다니다가 성당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종교 상태다.
성당을 다니지 않게 된 이유는 약 3가지 정도 되는데,
첫 번째는 그 '기복'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서 시험 잘 치르게 해 달라는 식의 간절한 사항이 없어졌고
그 전까지만 해도 성당 나가지 않으면 당장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았는데
어라... 성당을 나가지 않아도 내게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성향의 문제였다. 원래 카톨릭 자체가 성향이 좀 진보적이긴 하지만
光州의 경우 지역 성향 탓인지 그 진보성이 좀 강한 편이다.
사실 그 안에 있을 때엔 그게 진보적이었는지 어떤 건지 모르고 있었는데
성당을 옮기고 보니 여실히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부유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연희동 성당의 경우
미사 중간에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내용 자체가 너무 낯설었다.
결국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다가 냉담자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 이유는... 짧게 얘기하면, 유물론 공부를 하다 보니 많은 회의가 들었고...
그래도... 지금도 갑자기 뭔가 간절히 원할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주기도문을 외게 된다. 성당도 안 다니는 주제에...
몇 년 전 그루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 아마 10년간 할 기도를 다 했을 거다.
그리고 공연 오프닝날 시작 직전 암전 때에 또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인간이라는 게 워낙 약한 존재로 어쩔 수 없는 걸까...
종교는 기본적으로 '기복'의 역할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 '밀양'을 보면서 또... 종교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난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부류다.
미안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인권 등등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사형선고를 받을 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은 그냥 쉽게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차라리 감형없는 무기징역으로 죽기 직전까지 감옥에서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 생각이 중간에 잠깐 흔들렸던 때가 있었는데
TV 프로그램에서 감방이라는 공간을 보고난 후였다.
언뜻 생각에 차디찬 시멘트 바닥의 그런 감방이려니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감방이 생각보다 쾌적해 보였다. 어, 저건 아닌데...
그리고 영화 '밀양'을 보고 그 생각이 또 많이 흔들렸다.
아, 저럴 수 있는 경우도 있구나...
그 속에서 신앙을 갖게 되고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며
평안하게 지낼 수도 있는 거구나...
저건 아닌데... 이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할까보다......
사실... 이렇게 쓰고나니 괜히 미안하다...
이 영화가 이런 신변잡기 같은 얘기를 늘어놓을 영화가 아닌데...
충격을 좀 덜어내고... 다시 봐야지... 그리고 영화 얘기는 다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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