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27년전의 그 때를 떠올리다...
80년 5월의 광주...
그 때 난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집 밖에 펼쳐진 낯선 광경들이 어떤 이유였는지 알 수 없는 나이였고
그 땐 단지 학교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좋아했던 그야말로 철없었던 나이였다...
그 때의 진실은 대학 와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집은 충장로 금남로에서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였고
큰 4거리에 바로 위치해 있는, 당시엔 흔치 않은 4층짜리 건물이었다.
(4층의 절반은 꽃밭, 절반은 거실 형태의 큰 방이었고, 5층 옥상까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집 4~5층이 본의아니게 학생/시민군의,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군인들의 아지트로 사용되었다.
휴교령이 내려지고... 엄마아빠가 바깥 출입을 못 하게 한 상태에서
3층 거실 창문 밖으로 큰 4거리를 하루종일 구경하곤 했다.
택시, 자가용, 버스들이 시위용 차량으로 개조되어
사람들이 차량마다 가득 타고 구호를 외치며 지나갔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주먹밥들을 만들어 이들에게 연신 건네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위장면에서 나오는 구호를 들으며
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27년전에 수없이 들었던 바로 그 구호, 그 리듬이었다......
그리고 이요원의 가두방송 씬에서도
옛날에 어렴풋이 들었던 그 여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리고보면 시각적인 것 못지않게 청각적 기억이라는 것도 꽤 예민하다...)
그러던 어느날밤, 뒷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이 열렸고
긴장감이 역력한, 총을 맨 학생 같은 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4층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나와 오빠를 집 근처에 있었던 외갓집으로 가 있게 했다.
외갓집으로 서둘러 떠나면서 주방을 슬쩍 보니
시집 가기 전이라 함께 살고 있었던 막내 고모가
가장 큰 드럼통을 꺼내어 학생들에게 줄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난데없이 외갓집으로 피신간 나는 그날밤 외갓집 옥상에 앉아 있다가
잊지 못할 그 소리들을 들었다.
외갓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던 시내에서 연이은 폭음소리가 들렸다.
난 그 때, 시내에서 불꽃놀이를 하나 보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로... 전쟁을 방불케했던 총소리들이었다......
며칠 후 집에 가 보니 학생들은 가고 없었다.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그 무수하던 시위대도 보이지 않았고
거리엔 지나는 차도 사람도 없었고, 그야말로 아무도 살지않는 도시같았다.
그 시기쯤이었는지 그 이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집 바로 맞은 편에 내가 다니는 국민학교가 있었는데
대학생인지 누군가가 학교 화장실에 숨었다고 했고
군인들이 올라가는 것 같았고
이윽고 총소리가 들렸었다.....
정말이지 고요했던 그 며칠간이 지나고
어느 날엔가 갑자기 군인들이 우르르 오더니
약 한 달간을 우리집 4층에서 지냈다.
가끔 몰래 올라가보면 4층과 옥상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고
내게 건빵과자를 주기도 하고 총도 슬쩍 만져보게도 해 주었다.
자기네들이 알아서 밥을 해 먹었고 우리집엔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었다.
군인들이 그렇게 우리집에서 지냈던 꽤 길었던 그 기간에도
역시 도시는 조용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가끔 식탁에서... 동네 어느집 딸이 끌려갔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굳게 입을 닫았고
그나마 나로서는 3층 거실 창문으로 수없이 구경했던 그 현장과
양편 각각에게 요새 내지는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집에 살았던 연유로
이런저런 보고 들었던 광경과 소리들로 기억되어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어쩔 수없이 오버랩되는 낯익은 모습들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반신반의했는데 흥행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긴 한데
그런데 80년 5월 광주를 몰랐던 이들에게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다...
'꽃잎'도, 최근의 '오래된 정원'도, 그리고 이 '화려한 휴가'도
사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영화일 수는 없다.
끔찍했던 그 때를 온몸으로 겪었던 이들에게
사실 그 어떠한 방식의 재현이나 해석도 따라가진 못한다.
'화려한 휴가'의 경우, 대중성을 어쩔 수 없이 염두에 둔 만큼
그만큼의 대중적인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 몫을 한 거다.
도시 전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잔악무도한 참상을 겪었고
게다가 진실이 가려진 채 철저히 고립되었었고
그 이후로도 십수년간을 폭도 취급을 받았던 광주 시민들에게는
'80년 5월의 광주'를 함부로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크나큰 모욕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씻겨질 수 없는 깊은 상처이다...
타지인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건 정말 그렇다......
군사정권의 폐해도...
현재를 있게 한, 오랜 민주화운동의 의미도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할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젊은 친구들에게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비쳐질지... 가장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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