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brief comment

화려한 휴가

spring_river 2007. 8. 6. 17:54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27년전의 그 때를 떠올리다...

80
5월의 광주
...
그 때 난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
집 밖에 펼쳐진 낯선 광경들이 어떤 이유였는지 알 수 없는 나이였고

그 땐 단지 학교 안 가도 된다는 사실에 좋아했던 그야말로 철없었던 나이였다...
그 때의 진실은 대학 와서야 알게 되었다
...

우리집은 충장로 금남로에서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였고

4거리에 바로 위치해 있는, 당시엔 흔치 않은 4층짜리 건물이었다.
(4
층의 절반은 꽃밭, 절반은 거실 형태의 큰 방이었고, 5층 옥상까지 있었다
)
이런 이유로 우리집 4~5층이 본의아니게 학생/시민군의
,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군인들의 아지트로 사용되었다
.
휴교령이 내려지고... 엄마아빠가 바깥 출입을 못 하게 한 상태에서

3
층 거실 창문 밖으로 큰 4거리를 하루종일 구경하곤 했다.
택시, 자가용, 버스들이 시위용 차량으로 개조되어

사람들이 차량마다 가득 타고 구호를 외치며 지나갔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주먹밥들을 만들어 이들에게 연신 건네었다.
(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위장면에서 나오는 구호를 들으며

 
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바로 27년전에 수없이 들었던 바로 그 구호, 그 리듬이었다
......
 
그리고 이요원의 가두방송 씬에서도

 
옛날에 어렴풋이 들었던 그 여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그리고보면 시각적인 것 못지않게 청각적 기억이라는 것도 꽤 예민하다
...)
그러던 어느날밤, 뒷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이 열렸고

긴장감이 역력한, 총을 맨 학생 같은 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4층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나와 오빠를 집 근처에 있었던 외갓집으로 가 있게 했다
.
외갓집으로 서둘러 떠나면서 주방을 슬쩍 보니

시집 가기 전이라 함께 살고 있었던 막내 고모가
가장 큰 드럼통을 꺼내어 학생들에게 줄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난데없이 외갓집으로 피신간 나는 그날밤 외갓집 옥상에 앉아 있다가
 
잊지 못할 그 소리들을 들었다
.
외갓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던 시내에서 연이은 폭음소리가 들렸다
.
난 그 때, 시내에서 불꽃놀이를 하나 보다 생각했었다
.
그러나 그 소리는 바로... 전쟁을 방불케했던 총소리들이었다
......
며칠 후 집에 가 보니 학생들은 가고 없었다
.
한동안 적막이 흘렀다. 그 무수하던 시위대도 보이지 않았고

거리엔 지나는 차도 사람도 없었고, 그야말로 아무도 살지않는 도시같았다.
그 시기쯤이었는지 그 이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집 바로 맞은 편에 내가 다니는 국민학교가 있었는데
대학생인지 누군가가 학교 화장실에 숨었다고 했고 
군인들이 올라가는 것 같았고
이윽고 총소리가 들렸었다.....
정말이지 고요했던 그 며칠간이 지나고
어느 날엔가 갑자기 군인들이 우르르 오더니
약 한 달간을 우리집 4층에서 지냈다.
가끔 몰래 올라가보면 4층과 옥상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고
내게 건빵과자를 주기도 하고 총도 슬쩍 만져보게도 해 주었다.
자기네들이 알아서 밥을 해 먹었고 우리집엔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었다.
군인들이 그렇게 우리집에서 지냈던 꽤 길었던 그 기간에도
역시 도시는 조용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가끔 식탁에서... 동네 어느집 딸이 끌려갔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굳게 입을 닫았고
그나마 나로서는 3층 거실 창문으로 수없이 구경했던 그 현장과
양편 각각에게 요새 내지는 아지트로 사용되었던 집에 살았던 연유로
이런저런 보고 들었던 광경과 소리들로 기억되어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어쩔 수없이 오버랩되는 낯익은 모습들에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반신반의했는데 흥행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다행스럽긴 한데

그런데 80 5월 광주를 몰랐던 이들에게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하다...
'
꽃잎', 최근의 '오래된 정원', 그리고 이 '화려한 휴가'

사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영화일 수는 없다.
끔찍했던 그 때를 온몸으로 겪었던 이들에게

사실 그 어떠한 방식의 재현이나 해석도 따라가진 못한다
.
'
화려한 휴가'의 경우, 대중성을 어쩔 수 없이 염두에 둔 만큼

그만큼의 대중적인 효과를 거두었다면 그 몫을 한 거다.

도시 전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잔악무도한 참상을 겪었고

게다가 진실이 가려진 채 철저히 고립되었었고
그 이후로도 십수년간을 폭도 취급을 받았던 광주 시민들에게는
'80
5월의 광주'를 함부로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크나큰 모욕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씻겨질 수 없는 깊은 상처이다
...
타지인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건 정말 그렇다
......

군사정권의 폐해도
...
현재를 있게 한, 오랜 민주화운동의 의미도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할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젊은 친구들에게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비쳐질지...  가장 궁금하다......







'2007 > brief com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Tell Me on a Sunday  (0) 2007.10.05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0) 2007.08.25
Spitfire Grill  (0) 2007.06.25
밀양  (0) 2007.06.25
뮤지컬 대장금  (0) 2007.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