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혼자 연극보러 갈 때마다
약간의 걱정, 두려움을 안고 간다.
관객들이 없으면 어떡하지?…
관객들이 많지 않은 평일 공연을
내가 대부분 보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연극이라는 장르를 단순히 여가의 한 종류로만 여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애정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볼 때엔 사람이 꽉 차 있을 때보다
오히려 열 명도 채 안 되는 소수만이 보고 있을 때가 훨씬 좋은데,
연극을 볼 때엔 그렇지가 않다.
스크린이 아닌, 직접 배우를 보기 때문이리라.
프로페셔널리즘의 정도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관객이 적을 때와 많을 때에
배우 역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에…
관객이 없어 배우가 힘들지 않을까 저어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내가 가끔씩 선택하는 공연들이 작품성 면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극장을 들어서기 전까지의 그러한 걱정이 무안할 정도로
극장은 대부분 거의 꽉 차 있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공연 관계자인양 무척 기쁘고 뿌듯하다.
아, 아직 연극을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지난 공연 때에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가 결국엔 놓쳤던 공연,
‘홀스또메르’를 지난 주에 보았다.
보조석까지 완전 매진이었다.
주연배우(유인촌) 영향인지 중년의 관객들도 꽤 보였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무척 좋았다.
특히, 배우 유인촌을 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그의 연극 연기는 내 기대에 역시 벗어나지 않았다.
TV나 영화보다도 무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유인촌 역시 그랬다.
그는 이 작품에서
어린 말의 애교, 젊은 말의 힘, 늙은 말의 비애를
너무나도 잘 보여 주었다.
'홀스또메르’는
(지금 올리고 있는 공연이라서 그런지)
여러 부분에서 ‘캣츠’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말’ ‘고양이’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을 빗댄 점도 그렇고,
한때 화려했으나 늙고 병들어 버려지는 주인공의 캐릭터도 그렇고,
다른 점이 있다면
‘캣츠’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답게
그 주인공이 결국엔 추앙받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홀스또메르’는 러시아 뮤지컬답게
끝내 죽음을 당하게 되는 비극으로 끝나는 점,
그리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배우들의 연기와
(아직은 농익지 않은 나이의)국내 배우들의 연기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홀스또메르’의 말 역할을 맡은 코러스들의 연기는 좀 미흡했다.
‘캣츠’의 경우, 공연을 보는 동안 내내
그들을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 자연스럽게 착각할 만큼
미세한 몸동작 하나하나 완벽에 가깝다.
그에 비하면 ‘홀스또메르’의 코러스 말들은
그만큼의 철저한 연구, 연습이 부족한 듯해서 아쉬웠다.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캐릭터와 관객과의 동화를 차단하는 장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코러스 말들의 연기력은 관객 설득력이 좀 떨어졌다.
물론 유인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이 이를 커버해 주었지만
그래도 이 연극이 1인극이 아닐진대...
한두 명의 조연을 제외하고는 기대에 별로 못 미쳤다.
인생에 관한 톨스토이의 우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답게
여러 철학적 화두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인간의 소유욕이라는 것...
'나의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더욱 많이 갖고 싶어하지만
그러나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또, 몇몇 인상깊었던 대사들,
"인생이여... 삶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나니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나 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때론 가련하게 늙을 수도 있다."
홀스또메르...
연극 무대만이 선사해 줄 수 있는
그런 '기분 좋은 집중'...
오랜만에 그 상태를 즐겼다.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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