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brief comment

홀스또메르 - 어느 말 이야기

spring_river 2004. 1. 1. 19:00



난 가끔 혼자 연극보러 갈 때마다

약간의 걱정, 두려움을 안고 간다.
관객들이 없으면 어떡하지
?…

관객들이 많지 않은 평일 공연을

내가 대부분 보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연극이라는 장르를 단순히 여가의 한 종류로만 여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애정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볼 때엔 사람이 꽉 차 있을 때보다

오히려 열 명도 채 안 되는 소수만이 보고 있을 때가 훨씬 좋은데,
연극을 볼 때엔 그렇지가 않다
.
스크린이 아닌, 직접 배우를 보기 때문이리라
.
프로페셔널리즘의 정도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관객이 적을 때와 많을 때에
배우 역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에

관객이 없어 배우가 힘들지 않을까 저어하게 된다
.

그러나 (물론, 내가 가끔씩 선택하는 공연들이 작품성 면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극장을 들어서기 전까지의 그러한 걱정이 무안할 정도로

극장은 대부분 거의 꽉 차 있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공연 관계자인양 무척 기쁘고 뿌듯하다
.
, 아직 연극을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

지난 공연 때에 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가 결국엔 놓쳤던 공연
,
홀스또메르를 지난 주에 보았다
.
보조석까지 완전 매진이었다
.
주연배우(유인촌) 영향인지 중년의 관객들도 꽤 보였다
.

공연은 전반적으로 무척 좋았다
.
특히, 배우 유인촌을 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
그의 연극 연기는 내 기대에 역시 벗어나지 않았다
.
TV
나 영화보다도 무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
유인촌 역시 그랬다
.
그는 이 작품에서

어린 말의 애교, 젊은 말의 힘, 늙은 말의 비애를

너무나도 잘 보여 주었다.



'홀스또메르
(지금 올리고 있는 공연이라서 그런지)
여러 부분에서캣츠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
’ ‘고양이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을 빗댄 점도 그렇고
,
한때 화려했으나 늙고 병들어 버려지는 주인공의 캐릭터도 그렇고
,
다른 점이 있다면

캣츠 브로드웨이 뮤지컬답게
그 주인공이 결국엔 추앙받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
홀스또메르는 러시아 뮤지컬답게

끝내 죽음을 당하게 되는 비극으로 끝나는 점,
그리고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배우들의 연기와

(
아직은 농익지 않은 나이의)국내 배우들의 연기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홀스또메르의 말 역할을 맡은 코러스들의 연기는 좀 미흡했다.
캣츠의 경우, 공연을 보는 동안 내내

그들을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 자연스럽게 착각할 만큼

미세한 몸동작 하나하나 완벽에 가깝다
.
그에 비하면홀스또메르의 코러스 말들은

그만큼의 철저한 연구, 연습이 부족한 듯해서 아쉬웠다
.
브레히트의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캐릭터와 관객과의 동화를 차단하는 장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코러스 말들의 연기력은 관객 설득력이 좀 떨어졌다.
물론 유인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이 이를 커버해 주었지만

그래도 이 연극이 1인극이 아닐진대...
한두 명의 조연을 제외하고는 기대에 별로 못 미쳤다
.

인생에 관한 톨스토이의 우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답게
 
여러 철학적 화두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
인간의 소유욕이라는 것
...
'
나의 것'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더욱 많이 갖고 싶어하지만

그러나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 몇몇 인상깊었던 대사들
,
"
인생이여... 삶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나니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
누구나 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때론 가련하게 늙을 수도 있다."

홀스또메르
...
연극 무대만이 선사해 줄 수 있는

그런 '기분 좋은 집중'...
오랜만에 그 상태를 즐겼다.

 


 

2003.11.10
 

 

'2003 > brief com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섯 개의 시선에 대한 짧은 느낌  (0) 2004.01.01
비오는 수요일에 본 Wednesday Story...  (0) 2004.01.01
Good-Bye, Lenin!  (0) 2004.01.01
슬픈 通함  (0) 2004.01.01
냉정과 열정 사이  (0) 200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