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밤,
혼자 앉아서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우연히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HD 영상으로 새롭게 단장한 TV 문학관의 '내가 살았던 집'.
평소 호감있게 보아 왔던 배종옥과 장현성이 나오길래
그리고 펼쳐지는 내용이 TV를 끄지 못하게 하는 은근한 힘이 있길래
그냥 끝까지 계속 보았다. 시작부터 본 건 아니고 대략 초반부터였던 것 같고...
내용도 좋고 연출도 좋길래 나중에 찾아 보았더니
은희경 원작에, 이번에 '여자, 정혜'를 감독했다던 이윤기 연출이다.
(영어 제목이... 'The Hard Goodbye' 다...)
TV를 보다가 갑자기 겹쳐지는 기억이 있어
실로 오랜만에 그녀가 떠올랐다.
연희 언니...
내 실제 친언니와 이름이 같은 그녀는 첫 직장 동기(나이는 언니...)였다.
꽤 괜찮은 카피라이터였고 정말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좀 둥실한 체격이었고 그래서인지 나이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가 없었고
주위의 우리들은 남자들이 다 눈이 삐었다고 한탄했었다.
나와도 꽤 친했었다.
그녀는 어느 해에 갑자기 PR 일을 하고 싶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1년쯤인가 다녀와서 한국에 돌아와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
간밤에 집에 불이 나서... 정말 허망하게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때가 99년 초여름... 그녀의 나이 아마 32살...
나는 첫직장을 그만두고 잠깐 집에서 쉬고 있던 중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전화를 받았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고 쉼없이 눈물이 흘렀다.
동기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고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이제 이 세상에 그녀가 없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날,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제 정신이 아닐 만큼 취했었다.
그래... 그렇게 엉망으로 취했었다...그랬었다...
술이 깬 다음날... 그녀가 보고 싶었고... 그리고 그녀에게 미안했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 미안한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