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고 왔다.
다음주 주말에는 시외할머니 팔순이 있어서 못 갈 것 같고
그 다음주에 갈까 했다가
아무래도 계속 맘에 걸리고 또 좋아지고 계시대는데 얼마나 좋아지신 건가
마음이 안 놓이고 해서 오늘 혼자 다녀 왔다.
주말엔 늘 내려와 엄마 대신 병간호를 하는 오빠가 있었고
마침 언니와 형부, 조카가 병실에 와 있었다.
내가 간 시간이 마침 점심시간이라 오빠가 아빠한테 밥을 먹여 드리고 있었다.
누운 채로 입을 벌여 오빠가 떠 주는 죽을 드시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렇게 엄하시던 아빠가, 그렇게 자존심 강하시던 아빠가...
그리고
눈을 꽉 감은 채 입만 벌여 드시고 계시는 모습에 또 눈물이 났다.
그 꽉 감은 눈을 이해한다.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에 차라리 자신의 눈을 감는다.
이렇게 누워서 다른 사람에 의지해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그리고 자신에게 밥을 떠 먹이고 있는 자식, 아내의 모습을
그렇게라도 보고 싶지 않으셨으리라...
자신의 눈을 감아서라도 지금의 이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으리라...
아빠는 그렇게 거의 계속 눈을 감고 계셨다.
특히 자신이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떠 먹여 주는 밥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릴 때에,
기저귀를 갈기 위해 사람들이 끙끙 대며 자신의 몸을 움직일 때에,
휠체어에 태우기 위해 또 사람들이 끙끙 대며 자신의 몸을 옮길 때에,
그나마 요즘 나아지셔서 시작한 유일한 산책인
병원 복도를 휠체어로 왔다갔다 하실 때에...
병실을 나와 병원 복도를 나갈 때에는
눈을 감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신다.
그렇게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싶으신 것이다...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왔다갔다 돌면서,
그동안 내성적인 오빠는 분명히 아무 말 없이 밀고 다니기만 했을 것 같아
나는 아빠가 알 만한 가곡들을 조용히 허밍으로 부르기도 하고
(가곡을 불러 본 지 오래 되어 갑자기 생각나는 가곡이 왜 그리 없던지...)
요새 그루가 하는 이쁜 짓이나 말썽 같은 것을 아빠한데 얘기해 주기도 했다.
아빠는 나와의 대화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서울에 올라갈 차편 시간이 다 되어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오빠가 아빠 운동할 겸 엘리베이터까지 가자고 해서 함께 병실을 나왔다.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히려는 순간, 나는 보았다.
계속 굳게 감고 계시던 눈이
살그머니 떠지면서 엘리베이터 안의 나를 보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막내딸의 얼굴을 보셨다...
보고 싶은 딸의 얼굴을 그렇게 보셨다...
서올에 올라오는 내내 아빠의 그 눈빛이 떠올라 계속 울었다.
내려간다는 말에 뭐하러 또 오느냐고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난 오늘 잘 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왔냐?..." 하시던 말씀 속에서,
그리고 떠날 때에 엘리베이터에 사라지던 딸의 얼굴을 끝까지 보고 계시던 눈빛 속에,
내가 반가웠음을, 그리고 그래도 보고 싶어 하셨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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