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부로 지금의 회사 근속 만 20년이 되었다.
(그 때엔 노동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출근한 기억이...)
첫 번째 회사를 6년 다니고 두 번째 회사를 4년 다녔는데
사실 예전 그 업계에서는 그래도 꽤 오래 다닌 편에 속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기 10년 되었을 때에도
내가 이 회사를 10년이나 다닐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었는데
이젠 무려 20년이라니...
작년말에 어느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평소 거래하지 않던 은행이라서인지 재직증명서를 요구해서 제출했더니
창구 직원이 재직증명서를 보고는 신기한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며
"와~ 한 회사에 이십 년이나 다니셨어요???" 하고 묻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대답하면서 나도 다소 당황... 왠지 겸연쩍음...
예전에 읽었던,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_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회사가 창립 이래 계속 한 건물에만 있다가
23년만에 첫 이사를 했다.
지난 1~2주 계속 이삿짐 싸다가
오늘 새로 이사한 건물에 첫 출근하여 이젠 열심히 이삿짐 푸는 중.
회사 자체도 그리고 나도 오랫동안 묵은 짐이 많아
지난주까지 엄청나게 짐 버리기 작업을 했다.
나는 특히 웬만한 종이 서류를 거의다 파쇄처리했다.
서류 짐을 버리면서 보니, 지나간 내 스무 해가 보였다.
그동안 했던 많은 프로젝트들, 열심히 자료를 철한 스크랩북들...
치열하게 살았던 30대와 40대의 흔적들을 보며
잠깐잠깐 생각에 잠기고 그리고 과감히 모두 버렸다.
최대한 비우고 가볍게 이사가자고
그렇게 정리한 끝에 가져온 짐이 그래도 11박스.
뭐, 대부분은 회사 관련 자료와 간행물, 물품들이다.
만약 당장 퇴사한다면 집으로 가져갈 개인 짐은 이 중에 1/3 정도.
예전 건물이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서 근무환경은 좀 나아졌는데
예전 건물보다 도보 15분 정도 근방이긴 해도 전철역 호선이 바뀌어서
출퇴근은 한번 더 갈아타야 하고 소요시간도 좀 늘었다ㅠㅠ
번화가에 위치해 있어서 퇴근하는 길이 유흥을 시작하는 인구들로 북적인다.
건물 정면의 반대편에 있는 내 방은 북서향이어서
늦은 오후가 되면 창가 왼편에서 해가 서서히 내려오며 사위를 발갛게 물들인다.
다른 부서가 있는 우리 윗층부터는 멀리 남산과 남산타워가 보이는데
우리층에서는 하필 앞건물에 가려서 남산타워 끄트머리만 살짝 보인다ㅜㅜ
암튼...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질리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새로운 이곳에서 또 잘 살아보자!
※이사 며칠 후 정리정돈을 마친 내 방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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