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왔었는데
드디어 가게 되었다.
9월말까지 꽃무릇이 한창이라는 소식에 기대했었는데
우리가 간 9월의 마지막날에는 거의 시들시들해진 상태여서 좀 실망...
1주일만 더 일찍 왔어도......
꽃무릇은 지고 단풍은 들기 전인 애매한 시기구나.
그래도
이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듯
선운사로 들어서는 길부터 평온하고 아름답다.
선운사에 도착. 그런데 대웅전은 공사 중.
(왜 이리 난 어딜 가면 공사 중인 경우가 많을까ㅠㅠ)
선운사에서 나와 차밭을 지나 한참 걸어가면
올해 봄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도솔폭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천연 바위 위에 하천수를 끌어올린 폭포로
지형 자체가 폭포에 너무 안성맞춤이라 매우 웅장하고 멋있었다.
폭포 옆 비탈길을 올라가면 펼쳐있는 도솔제라는 호수는
(그런 게 있는 줄 몰라서 나는 안 올라간 탓에) 낭군님만 갔다 온.
계곡 숲길을 계속 걸어 도솔암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미륵바위.
뭔가 영험한 기운이... 눈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도솔암 그리고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는 윤장대.
높이 약 15m에 달하는 거대한 마애여래좌상.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는데
강화도 보문사의 마애불보다 왠지 친근한 이미지~
이곳 마애불도 주변 풍경도 너무 맘에 들어
그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경사진 좁은 계단을 더 올라가면
기도의 효험이 좋다고 소문났다는 내원궁이 나온다.
내원궁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문구.
이건... 너무 어려운 주문인데......
스님의 불경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던 내원궁.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으로 내려간 하산길에서 만난,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물려준 뒤 승려가 되어
이곳 선운사를 찾아와 수도했다는 진흥굴과
그 진흥굴 앞에 자리잡고 있는
600살 먹은 천연기념물 장사송.
내려가는 길, 거의 입구 근처에 다다라
다행히 꽃무릇이 아직 많이 지지 않은 곳을 발견!
선운사에 도착하기 직전에 일부러
차 안에서 송창식의 '선운사'를 들었다.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그 날따라 유난히 가사가 귀에 꽂혔다.
이건... 정말 시(詩) 아냐?!...
그 정서가 이어져서인지
선운사를 걷는 내내
아름다워 좋으면서도
아련한 슬픔이 같이 느껴졌다.
선운사는 반드시! 다시 오고 싶다.
4월의 어느 날,
천년 고찰을 둘러싼
500년 된 3000그루의 동백나무가
90%는 활짝 피어있고 10%는 지기 시작하는
딱 그런 날을 골라서 오고 싶다.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
어찌 보면 땅 위에 피어 있는 듯하게도 보일...
떠나려는 임을 잡을 만큼
후두둑 지는 동백꽃 눈물을 보고 싶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선운사에서 거의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서
원래 예정했던 다른 곳은 그냥 패스하고
바로 변산반도 낙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변산반도를 가는 해변길 도중에
베이커리 맛집을 들렀는데
시그니처 빵들은 다 품절된...
암튼 이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일몰시각 약 5분 전에 가까스로
격포해수욕장 도착.
사진으로 제대로 표현 안 될 만큼
해무 속으로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은 정말 멋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서서히 지지 않고
너무나 아쉽게도 금방 사라져 버렸다.
해 역시 퇴근길이라 후다닥 가버리는 건가.
내려오는 속도는 굉장히 빠른, 인생 같기도 하고...
그런데...
늦은 오후부터 사실 난데없이 통증이 와서
급히 병원 응급실 가서 한참 주사맞고ㅜㅜ
(지난번 여행에서는 그루아빠가 갑자기 아파서 고생했는데
이번엔 내 차례... 왜 이러지, 나이들어 그런가...)
그래도 응급처치를 한 덕분에
주사맞고 약먹고 자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다.
이제는 여행 시작하기 전에
그냥 無事만을 기도할 게 아니라
여행 중 갑자기 아프지 않기를 구체적으로 덧붙여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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