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9

Routine

루틴이 버거워졌다. 언제부터인가 귀찮아졌다. 대략 세어보니 평일의 경우 약 열다섯개의 루틴을 유지하고 있었다. 괜한 저항감인지 이유있는 게으름인지 최근 그 루틴을 하나씩 하나씩 놓고 있었다. 그랬더니 홀가분해지기는커녕 해야할 일을 못한 듯한 미적지근함이 숙제처럼 짐처럼 빚처럼 은근히 계속 쌓여 갔다. 루틴이 날 지배하는 듯해 기껏 거슬렀더니 오히려 루틴의 부재가 짓누르다니...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나…… 루틴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밤이면 늘 집에 전화걸어 엄마아빠한테 안부전화를 했다. 1주일에 겨우 한번 딸 목소리를 들려주는... 근데 이제 아빠 목소리를 매주 듣는 루틴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 불현듯 마음이 탁 가라앉았다. 그리고 갑자기 아빠 목소리가 무지 듣고 싶어졌..

2024/monologue 2024.02.24

2024 四旬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24년 사순 시기 담화] 하느님께서는 광야를 통해 우리를 자유로 이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실 때 언제나 다음과 같은 자유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이는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의 첫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탈출(exodus)이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겪은 속박에 무겁게 짓눌려 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자유로 이르는 길인 ‘열 마디 말씀’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형성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을 강조하고자, 우리는 이 말씀을 ‘계명’이라고 부릅니다. 자유로의 부르심은 힘든 ..

2024/quotation 2024.02.19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장욱진 회고전

덕수궁 미술관에 장욱진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 마침 그 인근이라 예전부터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먼저 찾았다. 지상은 공원으로, 그리고 기념관 건축은 지하로 조성한 것이 9.11 Memorial도 잠시 생각나면서 그 의미나 정서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건축 내외부를 돌아보면서 든 생각은 전체적으로도 세부적으로도 공간 연출의 철학이 참 좋았다. 특히 하늘광장 그리고 하늘길, 콘솔레이션홀... 상설전시관이 전시 정비로 휴관 중이라 못 봐서인지 성지순례보다는 좋은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박물관 안내서를 보니 못 본 게 너무 많다. 지상 공원은 그냥 시민공원 성격으로 생각하여 다음 전시 때문에 시간도 넉넉치 않고 해서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지하 박물관으로 향했..

2024/brief comment 2024.01.22

No Bears

★★★★ # 세 가지 영화가 3중으로 맞물려 있다. 영화 속의 영화, 영화 속의 현실, 영화 밖의 현실. 그런데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오묘히 넘나듦이 매우 탁월하다. #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반체제활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2010년 이후 출국 금지, 영화제작 금지, 투옥을 겪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며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란의 영화감독이다. 출국 금지를 당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국경 마을에 머물며 국경 너머 튀르키예의 영화 촬영 현장을 열악한 인터넷 환경 하에 원격 지휘하는데, 영화 관람 후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그 영화 속 영화의 여배우 프로필 또한 의미심장했다. 카메라 앞에서 히잡을 벗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사회 규범 속에서 출연 영화의 노출 씬 ..

2024/brief comment 202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