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brief comment

Frankenstein

spring_river 2014. 10. 22. 12:25





이번엔 연극이다!


2011년 영국국립극장에서 닉 디어의 극본, 대니 보일의 연출로 올려진 작품이다.

이 공연에서는 빅터와 피조물을 맡은 배우가 하루씩 번갈아 연기해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를 통해 모호한 경계를 넘어 인간=괴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실제로 두 사람 서로가 서로의 안에 깃들며 서로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상반된 주요 인물을 한 공연에서 번갈아 맡는 모험을 

외국에서는 종종 시도하는 듯하다.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도 예수와 유다 역을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 프로덕션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사실 그 두 사람이 웬만한 연기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런던 공연에서는 그걸 훌륭히 해냈나 보다.

이브닝스탠다드 어워드,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두 사람 모두
(공연계에서는 쉽지 않은 케이스인) 공동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그 프로덕션을 촬영한 필름을 내년초에 상영하는 것 같던데 궁금하긴 하다.


한국 공연은 이 런던 프로덕션의 극본을 바탕으로 하여

조광화 연출/각색으로 올려졌다.

크게 두 가지의 대본 수정이 이루어진 듯하다.

조역 캐릭터 성의 변화, 그리고 결말.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피조물에게 가르침을 주는 눈먼 노인과 빅터의 아버지 캐릭터가
여성 노인과 빅터의 어머니로 바뀌었다.

모성을 체험하게 하는, 그리고 모성의 결핍을 안겨주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의 의도...

그리고 엔딩이 바뀌었다.


이 연극 작품은

피조물에 보다 포커스되어 있다.
괴물이 아닌 피조물(Creature)이

천천히 언어, 지능, 그리고 도덕성까지 습득하는 과정과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사랑받길 원하는 간절함이 주조를 이루는 심리 묘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고독했고 그래서 친구를 원했다.


이 공연은 피조물 역을 맡은 박해수의 연극이기도 했다.

배우의 에너지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강렬함을 느끼게 해 준 무대였다.

신체 언어의 최고치를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했고

정확한 발성과 섬세한 연기력이 매우 뛰어나

박해수가 아니면 다른 누가 이 역을 이처럼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대체불가능한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비닐과 랩, 테이프로 디자인된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도 인상적이었고

역시 같은 소재의 소품과 오브제들도 일관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 작품은 빅터와 피조물 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피조물이 더욱 부각되는 극본이긴 했지만

빅터 역을 맡은 이율 배우의 캐릭터 소화력 또한 미흡해서 

마치 주변부 인물처럼 밀려나 버린 듯해 이 점은 많이 아쉬웠다.


자, 이제 엔딩의 비교_

소설 원작의 결말은

빅터가 죽게 되고, 피조물은 자신도 죽을 것임을 암시하며 사라진다.

런던 프로덕션 연극 극본의 엔딩은

달아나는 피조물, 그리고 그를 쫓는 빅터의 뒷모습으로 막을 내렸다고 한다.

이번 한국 공연의 엔딩은

빅터가 자살하지만, 피조물이 오히려 빅터를 다시 살려내는 새로운 결말이었다.

연출은 '인간도 지배당할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라'는 메시지로

관계의 역전을 그리고 싶었다고 피력했다.

그런데 엔딩 이전까지의 흐름에 자연스럽지 못해 

엔딩만 모나게 돌출되는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크게 충격적인 효과를 안겨주지도 못했다. 

새롭게 시도한 엔딩이었으나

이 작품에는 소설의 엔딩이나 극본 원작의 엔딩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듯......


종합하여 나만의 평가를 하자면

올 봄에 올려졌던 동명의 뮤지컬보다는 50배 나았다!

(뮤지컬에 대한 지난 포스트는 http://spriverk.tistory.com/654)


소설 세번째 판본의 제목이 

'Frankenstein : or Modern Prometheus' 이었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고

그 인간들을 사랑했고

그 인간들을 위해 불을 훔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간을 괴물이라면서 버렸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기보다는 

신이 아닌 인간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다.

어떠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일 뿐

만들고 난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은 도처에 널려 있다.

문명을 이루어가며 자연을 정복했다고 오만해 하는 것도 그러하고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그려지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혁신적인 창조는

지배했다는 착각에 자만을 부르고

그 대상에 대한 숭고한 태도마저 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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