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brief comment

피맛골 연가

spring_river 2010. 9. 15. 14:49



공연을 보고 이 곳에 Brief Comment를 남겨 오면서
이번 공연만큼 뭔가를 쓰기 전에 이토록 심란한 건 또 드문 일이다...

사실 이 뮤지컬, 별로 볼 생각이 없었다
.
그런데 우리 팀에서 근무했던 옛 직원이 그 작품 마케팅 TFT에 프리랜서로 들어가서

시간 내서 꼭 보러 와달라고 초대권을 친히 보낸지라 그냥 그 정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뮤지컬 '피맛골 연가'는 시작점부터 뚜렷한 목적을 띤 공연이다
.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뮤지컬을 한 편 만들고자 하는

서울시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관제 뮤지컬이다
.
작년부터 Pre-Production이 시작되었을 때의 프로젝트명 '뒷골목 중매쟁이'

올해 본격적으로 공연을 알리면서부터 '피맛골 연가'로 바뀌었다.

피맛골이라
...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
600
년 전통의 서민들의 거리답게 선술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던 그 피맛골을

불행히도 난 알지 못한다.
'
백마'는 나의 대학 초년시절에 일산 재개발로 사라져 아쉽게도 가 보지 못했던 곳이고

(
동물원의 '백마에서'라는 노래의 정서가 그래서 피부로 와 닿지는 못한...)
'
피맛골'은 종로에서 잘 놀지 않은 탓 + 나의 무지함 탓에 이제는 놓쳐 버린 곳이 된
...
그런데

서울시에서 만드는, 서울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의 제목이 '피맛골 연가'...
이명박 서울시장 때부터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
디자인 서울'이라는 ('디자인'이라는 멋진 단어가 이처럼 부끄러울 수 없는) 모토 하에
피맛골을 확 철거해 놓고는 '피맛골 연가'...
이건 '아이러니'라는 말도 너무 고급스러운 말이다
.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
정말 그 어떤 단어보다 욕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

일단... 이것저것 다 떠나서 공연 자체만 얘기하자면
...
서울시의 든든한 지원 덕에 (이런... 어떻게 얘기해도 공연만 얘기할 수 없네
...)
공연계 탑 클래스에 드는 크리에이티브팀들이 구성되었고

극본 배삼식, 음악 장소영, 무대 서숙진, 안무 이란영, 의상 한정임 등
이들의 오랜 사전 공동작업의 결과는 탄탄한 작품 완성도를 낳았다.
남녀 주인공 박은태, 조정은은 그들의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웬만한 대형작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대규모 앙상블들의 힘도 상당히 컸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작품은 꽤 잘 나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열렬한 환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
정말 이 작품이 그렇게 좋은 건가? 아님 가격 대비 만족도인가
?...

가격 얘기가 나온 김에 다시 공연 외적인 요소로 돌아가보면
 
이 작품은 서울시에서 돈을 벌고자 한 목적인 아닌 도시 홍보 목적이었기에

티켓가격이 최고가 5만원(보통 동일 공연장 티켓가의 약 1/3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게 책정되었고, 게다가 서울시 주관의 '천원의 행복' 이벤트도 이루어졌다
.
10
일간의 짧은 공연기간, 12회의 공연
_
3
천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매회 거의 꽉 찼다
.
물론 티켓가격의 힘이 컸다
.
수익구조를 당연히 계산하여 이 작품이 타 공연처럼 최고가 10~12만원이었다면

결코 이와 같은 흥행은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작비 22억이 들었다는 이 작품
,
위 공연 환경에서 전회 매진되었다 해도 티켓수익은 약 10억원 수준이다
.
나머지 12억은 좋게 말하면 서울시에서 우수 문화공연을 시민들에게 지원한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서울시의 세금이 사용되었다...
1
막 공연이 끝나고 (다시 말하지만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
인터미션 시간에 프로그램을 뒤적이다 맨 앞장에 있는 오세훈 시장의 인사말

'
뉴욕의 <브로드웨이 42번가>나 런던의 <메리 포핀스>처럼
 
서울도 서울을 상징하는 뮤지컬이 있어 도시를 세계에 알렸으면 한다'는 문구를 보고
공연에 대한 감흥이 사라지며 진짜 확 빈정 상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 정말 머리가 있긴 한 거야
......
공연이나 영화, 문학 작품을 통해 어떠한 도시의 이미지가 널리 알려지고

관광객들에게도 멋진 연상 포인트로 자리잡을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그것이 잘 보존되어 있을 때이다.
십분 양보해서 뮤지컬 '피맛골 연가'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치자
,
대체 이 작품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서울의 도시 이미지가 과연 있기는 한 거며

 공연 관람이 계기가 되어 찾아가 볼 수 있는 피맛골의 흔적이 과연 있는지...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무자비하게 철거를 해 놓고는

조선시대 그 곳에서의 사랑과 서민 애환을 다룬 이야기를 대표 문화 상품으로 만든다?
도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배짱인지
......

뮤지컬 '피맛골 연가'
 
창작 뮤지컬 작품 자체로는 상당히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
그러나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라는 목적성에는 하나도 맞지 않다
.
아무런 이미지나 고유 컬러를 지니지 못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천박하고 그래서 불행한 스토리를
굳이 알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



인터넷에서 피맛골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피맛골의 마지막 식당이 철거하면서
그 주인장 내외가 써 붙였다는 만가와 그에 대한 기사...
'
피맛골의 곡' 문구를 읽어보니
어제 들었던 그 어떤 뮤지컬 넘버의 가사보다 절절한......


 




'2010 > brief comm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Billy Elliot  (0) 2010.10.29
옥희의 영화  (0) 2010.10.27
The Story of My Life  (0) 2010.09.13
서편제  (0) 2010.09.03
내공...  (0) 201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