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어젯밤 한겨레신문 신문기자로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나 어떻게 해야 되요?"
"... 술 마시고 있구나."
"네, 누나, 나 어떻게 하죠? 누나가 가르쳐 줘요!"
"... 그러게"
"나는요, 내가 지금 사진을 찍고 있어야 하나, 아님
저것들한테 신나를 확 뿌리고 불을 질러 버려야 하나
그랬어요..."
"...그렇지 않아도 네가 국회 담당이라는 게 생각나서
현장에 너 있었겠구나 잠깐 생각했었다..."
"누나, 이제 어떻게 하죠?"
"......그러게, 나도 정신적 공황 상태다, 지금은"
둘.
시댁에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신나게 놀고 있는 그루랑 좀 있다가
집에 와서 12시 마감뉴스를 켰다.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그 현장의 장면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진짜 누구 말마따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대통령이 탄핵이 되어서 슬프거나 안타까운 것도 아니고,
그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의 상황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막히고 맥이 풀리고 눈물이 나려 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다 토했다...
셋.
그럴 때가 있다.
아침에 설핏 눈을 뜰 즈음,
아, 어제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없던 일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들 때...
오늘 아침이 그랬다.
혹시 어제가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헛된 바람...
출근길에 바라 본 바깥 풍경은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황량해 보였다.
그 비슷한 날이 이전에도 있었다.
지지난 대선 때에 김영삼이 대통령 당선이 된 그 다음날...
난 내 정치적 의지에 따라 백기완을 찍었지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상치 않은 결과가 나왔고,
아마 그 다음날 보희 오빠 면회를 가기로 한 날이라
상봉터미널로 가기 위해 나선 이른 아침의 풍경이
오늘 아침 같았다.
그 때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선전물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던 그 황량한 거리.
풍경 역시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른지라
내게 당선 발표 직후의 새벽 풍경은 그랬다.
나는
탄핵안이 가결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이야 원래 싸움 잘 하는 애들이니
열린우리당 애들이 잘 봉쇄를 할 걸로 믿었었나 보다.
문제는 다른 애들의 패거리 숫자가 더 많았고
더 싸움을 잘 했다는 거다.
암튼 오늘 아침은 내게 그랬다...
프리챌의 한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한 선배는 어제의 사건을
정치10단의 노무현의 대찬 승부수로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1달간 제발 그 놈의 입조심 하고
그냥 침묵으로만 있어주면
이변이 없는 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글쎄, 그렇게 되면 다행인 것이고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그 폭거를 당한 국민들의 상처는 어떻게 하지...
오늘 한겨레신문에 안도현 시인이
'울지 마라 대한민국'이라는 시를 실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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