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 시절부터 애용하기 시작한,
그곳을 떠난 이후로는 다소 먼 거리 때문에
아주 가끔 찾곤 했던 곳,
어쩌면 이제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곳
씨네큐브에서 'Reconstruction'을 만나다.
하나. 사랑에 관한 독특한 영화
일관된 스토리텔링이 아닌, 몇 차례의 변주가 계속되는
그야말로 '재구성' 영화다.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그리고 괜찮은 영화였다.
사랑에 빠지는 들뜬 기분과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사이를 맴돌며
연인들이 느끼는 섬세한 떨림을 포착해낸 작품이다.
오히려 기대하고 봤던 'Closer'보다 더 나은 듯 싶었다.
(두 영화 모두 사진작가와 작가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꽤 많다.
스틸컷만을 사용한 베드씬도 인상적이었고
위성사진으로 표현한 두 남녀의 위치 표현도 재미있었고
추락하는 한 남자의 Image 트릭도
담배를 이용한 'Falling in love' 마술도 그랬고...
남자가 보게 되는, 두 여자가 함께 만나는 장면도 의미심장했고...
거칠어보이는 질감의 영상도 좋았고
(참고로 이 영화는 2004년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이다)
음악의 사용도 매우 적절했고...
참, 놀라운 것은 옛 애인과 새로운 애인이 1인2역 연기였다는 것.
영화를 보면서는 난 눈치도 못 채고 있었고
영화가 끝나고 전단을 보고 알았다.
'마리아 보네비'라는 이 여배우의 연기 또한 대단했다.
오랜 연인을 버리고 첫눈에 반한 새로운 이와 사랑을 시작한 순간
그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집도 사라지고 친구, 오랜 연인, 아버지조차 그를 모른다...)
그렇게... 사랑을 하면 세상이 바뀐다...
그가 너를 사랑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오랜 애인이 대답을 주저하는 순간,
그는 우연히 운명과 같은 다른 여자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옛 애인의 모습을 한, 그러나 여전히 그를 모르는 여자의 부탁에
자의반타의반으로 키스를 하는 순간,
그를 기다리던 운명의 그녀는 떠난다.
그리고 그가 뒤돌아 보았을 때
텅빈 황량한 지하철역 그리고 그림...
그렇게... 사랑은 의심하면 떠난다...
굉장히 잔상이 많이 남는 영화다.
둘.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 속 멘트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내레이션
'이건 영화다.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
-처음으로 만난 여자와 남자의 대화
"왜 나죠?"
"내가 당신의 꿈이라면 당신은 내 사람이니까"
-작가 남편의 인터뷰 중 사랑에 대한 그 사람의 대답
'여자에게 사랑이란 필수품이다.
사랑없인 살 수 없다.
그 사랑은 결심하고 행한 의식적 선택이다.
그러나 남자는 사랑이 불시에 찾아오길 원한다.
사랑을 계획하길 원하지 않는다.
사랑은 떠맡게 된 것이다.'
셋. 사랑 그리고 기억에 대하여
사랑의 재구성 이 영화를 보고난 후 든 생각...
그렇다, 사랑은 재구성된다.
사랑의 기억은 대개 정확치 않게 된다.
어디에서 그 사람을 처음 보았던가,
언제부터 그 사람이 내 안에 들어 왔던가,
그 사람과 나에게 어떤 얘기를 했던가,
그 사람의 눈길이 이러했던가 저러했던가,
그 사람이 먼저 나를 떠났던가, 내가 먼저 떠나 보냈던가...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애매해지면서
서로 사랑한 사이였는지조차 명확치 않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시간과 함께 의식 속에서 조각나고 사라진다.
그렇게 사랑은 주관적이다.
그 때를 기억하면서 순간순간이 허구가 된다.
그렇게 사랑은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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