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brief comment

The Cherry Orchard

spring_river 2024. 6. 17. 11:10

 





★★★★☆



# 연초에 LG아트센터 24년 기획공연 라인업에서
   Simon Stone 연출의 '벚꽃동산'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다.

   그동안 NT Live 공연영상으로 그의 작품
   '예르마', '입센의 집', '메디아' 세 작품을 접했었기에
   그의 공연을 실황영상이 아닌
   무대에서 직접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대가 됐다.

   캐스팅 미공개 상태였지만
   '사이먼 스톤' 연출이라는 그것만으로 기꺼이 조기예매를 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캐스팅이 발표되었다.
   전도연, 박해수라니!!! Wow~
   더욱더 기대만발...
   연출 이름 하나만 믿고 좋은 자리 사전예매한 나를 칭찬^^

   그리고 공연 한 달 전, 체호프의 '벚꽃동산' 희곡을 읽었다.
   다른 작품들처럼 체홉스러움이 묻어나는...
   그런데 '갈매기'나 '바냐아저씨'보다는 덜 재미있었다.
   고전의 해체와 재해석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이
   이 작품을 어떻게 각색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배우들과의 사전워크샵 차 방한 시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시에 가면 머릿속 고전 수백 편 중 어떤 작품이
   이 도시와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릴지 연구하는 과학자가 된다'고 말한 그는,
   22년 겨울 한국에서 일주일 여 시간을 보낸 후
   체호프 작품 중 하나를 한국의 이야기로 다시 써보고 싶다고 제안했고
   런던으로 돌아간 뒤 오랜 고민 끝에
   체호프의 유작이기도 한 '벚꽃동산'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미 200여 편 넘는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한 이답게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들도 직접 추천했다고...)
   여전히 사회적 위계질서가 살아있고
   정치적 격동, 경제성장, 기술발전, 민주주의 확대 등 빠른 변화를 겪었으며
   젊은이들이 전통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금의 한국보다
   이 작품이 더 걸맞은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 이 작품은 배우가 대사 한 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희극과 비극의 사이를 오갈 수 있는데
   희비극적 연기를 빠르게 넘나드는 특별한 능력이 세계적으로도 이미 증명된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을 이 작품의 또다른 선정 이유로 내세웠다.
   세계적인 연출가가 한국을 보며 떠올린 '벚꽃동산'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할지 궁금...기대...


# 역시 Simon Stone!
   극작과 연출 모두 훌륭했다.

   원작의 무대와 인물을 너무나도 한국에 잘 대입시켜 놓았고
   마치 체호프가 쓴 듯 체호프 특유의 대사 스타일도 잘 살려져 있었다.
   그의 해체와 재해석을 통해 태어난 한국판 '벚꽃동산'은 
   자신의 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희극적인 상황은 슬퍼지고 비극적인 상황은 우스꽝스럽기도 한
   매우 탁월한 희비극이 되었다.

   원작은 홀로 남은 늙은 하인이 엔딩에 내뱉는 
   "살긴 살았지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아. 아무것도 없군."
   이 대사가 마지막 깊은 여운을 남기는 데 반해,
   이 공연은 모두가 떠나고 집안에 홀로 쓰러져 있는 사촌형제의 모습과 함께
   철거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전부 다 부숴버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올 거야! 오늘이 시작이야!"하는
   황두식의 힘차지만 왠지 공허함이 예견되기도 하는 외침으로 끝이 난다. 

   역시 전도연! 역시 박해수!
   이해와 공감이 쉽지 않은 원작의 '류바'를 

   대책없고 철없지만 연민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매력적인 캐릭터 '송도영'으로 거듭나게 한 건
   온전히 전도연 배우의 힘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박해수 배우는
   이번에도 객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더할 나위 없었다.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정말 계속 꼭 연극을 해 주기를~
   오랜만에 보는 손상규 배우 역시 
   아날로그 레코드 플레이어같은 캐릭터 특성을 잘 표현해 주었다.  

# 유니크한 무대세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독특하게 건축가의 무대디자인, 그리고
   무대디자이너의 협업으로 미장센이 완성된 이 무대는
   무대 자체가 마치 생명력있는 하나의 등장인물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극을 해치는 과도한 존재감은 피하면서
   각 씬들을 위한 효과적인 공간과 동선의 기능을 빼어나게 창출해냈다.
   전작 'Yerma'의 사면 투명한 벽이나 'Ibsen House'의 유리창처럼
   이 작품 또한 집 세트의 유리창으로 걸러보는 인물들의 관계는
   관객이 이들의 삶을 엿보는 듯한 느낌도 만들어 내었다.
   집을 감싸며 만들어내는 조명디자인과의 조화 또한 좋았다.


# 공연관람 후 읽은 프로그램북에서 연출가 인터뷰 글 중
   흥미로운 두 지점을 발견.

   배우들과의 언어소통 과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 中_

   내가 독일어와 영어를 이중 언어로 배우며 자라났다는 점과 
   라틴어를 공부했다는 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는 사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인들은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낄 것이다.
   문장을 끝까지 들어야만 그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
   이런 점에서 나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라틴어의 어순이 상당부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걸 몰랐고,
   동사가 문장의 끝에 온다는 게 외국인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는 걸 몰랐고,
   우리말과 같은 어순의 언어는 문장을 끝까지 들어야만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게 특징이라는 걸 몰랐네...
   음... 그렇구나... 그렇겠네...

   그리고, 호주를 비롯한 해외투어도 계획하고 있는 이 공연이
   다른 나라들에게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하는 질문에 대한 답 中_

   우리가 만든 '벚꽃동산'의 경우,
   전쟁 이후에 특권을 누려온 한국 가정이 등장한다.
   그 가정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사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엄청난 부호이거나 유명인이 아니고서는
   운전사나 가정부, 정원사 등을 두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점에서 등장인물들은 한국적인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끌어내게 된다.
   서빙을 하는 사람과 서빙을 받는 사람의 관계성은
   결국 다른 문화권에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점을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 특수성이,
   이를테면 호주의 관객들에게도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내가 호주나 독일에서 신작을 위해 작품을 골라야 한다면
   '벚꽃동산'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가족 안에서 발견되는 위계 질서가
   더 이상 존재하는 사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억만장자도 직접 운전해서 일터로 간다.
   독일에서 자신의 부를 측정하는 통계 조사가 있었는데,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축소시켜 말하고
   가난한 자들은 재산을 올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부자는 부자인 게 부끄럽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게 부끄러워서
   두 계층 모두 평등해 보이는 중간 지대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드러난 것이다.
   평등함에 대한 신화가 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고,
   이를테면 억만장자들은 부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건강하지 못한 위계 질서나 관계성들이
   아직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같은 맥락에서 전통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려는 서구의 전통도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이 공연의 재미라 생각한다.
   각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부, 기사, 정원사 등이 외국에서 그리 흔한 모습이 아니구나.
   영화 '기생충'의 경우에도 등장인물들이 흥미로운 한국적 특수성으로 보였겠구나.
   이 공연을 보며 해외 각국에서 공연되어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벚꽃동산' 뉴버전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그렇지는 않구나.
   음... 그렇구나... 그렇겠네...

   그래도, 한국을 배경으로 만든 이 새로운 현대판 '벚꽃동산'이
   한국을 넘어 전세계 관객들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그리고 사이먼 스톤의 또하나의 고전 재해석 성공작으로 평가될 것 같다.




 

 

 

 

 

 

 

 

 

 

 

 

 

 



로비 및 공연장 촬영 사진~

 

 

공연장을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무대의 집

 

 

자리에서 바라본 무대 정면

 

잿빛 눈이 내리고 파티용 풍선 소품 등이 들어선, 2막 시작 전의 인터미션 풍경

 

공연이 끝난 직후

 

커튼콜

 

 

 



https://youtu.be/GNkfh6zRdAw?si=TMUtMp0OaTt3Fz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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