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그루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의 어느 한 까다로운 아줌마가 이 동네의 모든 어린이집을
일일이 다 돌아다니며 평가해 본 결과 가장 좋다는 집을
우리는 그 정보를 거저 얻어 그 곳을 선택했다.
집에서도 걸어서 3~4분 거리로 가까운 데다가
시설도 괜찮고 무엇보다도 선생님 對 어린이의 숫자가 적어
꼼꼼이 신경을 잘 써 주고 친절하고 프로그램도 알찬 편이고...
그루 아빠랑 할머니가 사전답사를 마치고나서 결정을 내려
1월3일부터 다니기 시작하였다.
첫 1주일은 대견스럽게도 잘 다녔다.
늦잠꾸러기가 아침에도 잘 일어나서 씩씩하게 다녀 오곤 했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나자 사태가 변했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면서 아침부터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부리기를
거의 1주일...
어린이집에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말로도
원래 첫 1주일 후 시점이 고비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아무런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식구들이 결론내리기를,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집안에서 모든 식구들이
자기만 떠받들어 주는 분위기에서 크다 보니
동등한 입장의 여러 무리 중의 하나가 되는
어린이집에 적응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자체 진단.
나중에 퇴근하여 집에 와서 듣는 바에 의하면
매일같이 아침마다 거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일어나서부터 대문을 나서기까지 온 식구와 전쟁,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도 안 들어가겠다며 울고불고 전쟁...
선생님들은 그루한테 신경도 많이 써 주고 잘 해 주는 듯한데
선생님들도 힘들고 식구들도 힘들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언니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던 중
시어머님이 다른 집에서는 어린이집에 먹을 거랑 그런 것들도
잘 갖다 주는 것 같더라는 말씀이 문득 나오게 되었는데
시누이 언니가 스치며 하는 말이
"그럼, 언제 봐서 공연 티켓 같은 것 갖다 주면 어떨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참,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진짜 그렇게 할까? 생각하다가
어휴, 무슨 콩만한 애한테 벌써 그런 걸 써야 하나? 생각도 들고...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한 20~30분간 열심히 했다.
중고등학교보다 초등학교가, 초등학교보다 어린이집이
선생님들한테 더 신경쓰게 된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루는 저렇게 어린이집 갈 때마다 전쟁을 치르고
선생님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분명 힘들어 할 테고
그렇지 않아도 적응 못 하고 있어 걱정인데
계속 진전이 없으면 앞으로 어떡하나도 싶고...
이런저런 갈등 끝에 결국은 결심하고야 말았다.
'그래, 선생님들한테 공연티켓 좀 바치자...'
나의 오랜 公平無私 신조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돈을 들이는 것도 아닌,
티켓운영팀한테 부탁하면서 얼굴에 철판 한번 깔면 될 일이라
나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결국 티켓 여유가 있는 어느 한 공연의
10만원짜리 R석 티켓 5장을 빼내어
감사의 뜻을 표하는 짧은 편지와 함께
시어머님께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전해 달라고 했다.
결과는?
일단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고맙다는
그리고 그루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얘기를 담은
답장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루는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집에 도착하자마자 하도 울어대서
같은 또래반이 아닌 7세반에 시험삼아 보내졌는데
그 7세반에서는 아이들이 동생처럼 그루를 잘 돌봐준 덕택에
그루가 또래반에서와는 달리 더 잘 어울리게 되었고
이젠 아침마다 안 가겠다며 버티고 울지도 않게 되었고
선생님으로부터는 일단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때까지
그냥 7세반에서 형 누나들과 어울리게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뭐... 꼭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루는 아침마다의 전쟁 없이 어린이집에 잘 다니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기 본위의 생활만 하던 터라
같은 또래들보다는 자기를 챙겨 주는 윗나이반이
더 편하고 좋았나 보다.
참... 나도 웃긴 엄마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식구들 중에 그루 어린이집에 안 가 본 사람이
나 뿐이다.
그루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아빠 모두
데리고가고 다시 데려오고 하느라 다 가 봤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그 어린이집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루의 어린이집 생활에 좀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
촌지 역할의 공연티켓을 구해다 주는 것일 뿐...
Anyway,
난생 처음의 촌지 결과이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마음 한 구석을 여전히 불편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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