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brief comment

Great Comet

spring_river 2021. 4. 8. 11:51

 




★★★☆



# 수년 전 브로드웨이 공연 소식으로 접했을 때부터 어떤 공연인지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니, 한국에 이 작품을 가져온 게 굉장히 용감한 시도였다는 생각...
   용감한 제작사가 있어야 이렇게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모험에는 어쩔 수 없는 댓가가 따르긴 하지만ㅜㅜ)

#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무대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기존의 프로시니엄 무대 대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7겹의 무대와 
   강렬한 레드 컬러의 어우러짐이 유니버설 아트센터와 완전 맞춤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배우, 연기를 하는 뮤지션이
   모든 공간을 넘나들며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흥'은 정말 최고였다.

   기본적으로 음악이 너무 좋은 작품이었다.
   너무 다양한 장르라서 약간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곡 하나하나 잘 만들었다.
   무대가 많은 만큼 조명도 열일한다.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솜씨답게 무대와 조명 모두 인상적이었다.

# 배우들의 기량도 좋았다.
   정은지는 노래, 춤, 연기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아이돌 중의 하나라
   뮤지컬 무대 위의 모습이 궁금했던 이였는데 
   쉽지 않은 작품임에도 역시 주연의 몫을 잘 해내어 반가웠다.
   케이윌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이충주는 아나톨 역에 너무 잘 어울렸다.

#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의 중간 70페이지 분량을 작품화한 것이라
   등장인물도 많고 스토리 전후가 잘 따라가지지도 않고
   게다가 Sung-through 뮤지컬이라 어떤 면에서는 불친절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독특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타입이라
   그 자체로 즐기기에 미덕이 충분한 공연이기도 하다.

   다만, 이 작품의 원제에서도 드러나있다시피
   나타샤와 피에르가 작품의 두 개의 큰 축일진대
   피에르의 캐릭터가 작품 속에 잘 살아있지 않은 게 좀 아쉬웠다.
   단순히 비중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다른 등장인물들 대비 다르게 포지셔닝된
   피에르의 태도, 내면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색다른 형식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작년에 한차례 개막을 연기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배우 동선을 재정리하며 관객과의 어울림을 축소하긴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에 금기나 다름없는 Immersive 공연인 건 맞다.
   빨리 정상을 되찾고 제대로 Immersive된 버전의 이 공연을
   더욱 신나게 만날 수 있게 되길...

 




# 공연장을 나서며 휴대폰을 켜니 톡이 한가득 쌓여있다.
   그때서야 알았다. 아, 시장선거 개표결과가 나왔겠구나...
   그걸 잠시나마 까마득히 잊을 만큼 공연에 빠져 있었네^^

   기분좋았던 발걸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 이튿날 페북을 보니, 한 선배가 
   황석영 작가의 '껍데기만 남은 성년' 글 중의 일부를 옮겨놓았는데
   마음에 와 닿았다.

   "환절기의 들판에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갈 철새들의 무리가 보인다.
   새들은 한 무리씩 날아와 숲의 가장자리에 앉거나 긴 전깃줄에 내려와 앉곤 한다.
   그러다가 적당한 간격의 자리들이 가득차게 되었을 때,
   보다 큰 무리의 철새들이 날아오면 동요가 일어난다.
   새들은 간격을 좁혀서 옆으로 빈 공간을 내 주거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일단 하늘로 일제히 떠오른다.
   그들은 새로운 무리와 더불어 허공을 빙빙 돌면서 날아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맞춤한 간격으로 내려앉기 시작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지금의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다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허공을 맴돌고 있는 때'라고 답하겠다.
   그러고는 우리의 작업이 '새들이 다시 내려앉는 것'에 관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맞춤한 간격을 잘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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